오는 3월부터 중국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 시험인증 절차가 간소화된다. 로봇 인증에 소요되는 비용·시간을 절약하는 것은 물론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주도 하에 다른 국가와 로봇 상호인증 포문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로봇 4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신호탄이 될 지 주목된다.
문전일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은 2일 “국내 기업의 중국 시장 판로 확대를 위한 로봇 상호인증을 3월 중 본격 개시할 예정”이라며 “이를 위해 중국 측과 공동행사를 기획 중이며 로봇 상호인증 1호 기업도 곧 탄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 최대 로봇시장인 중국에서 제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하려면 중국 정부가 요구하는 '중국로봇인증(CR)'을 받아야 한다. 이미 국내에서 동일한 항목의 인증을 통과하더라도 중국에서 별도 인증을 거쳐야 사업을 개시할 수 있는 구조다.
진흥원은 중국 로봇 시장에 진출하려는 우리 기업이 공통 항목에 한해 국내에서 미리 인증을 받으면 현지에서 즉시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2018년 5월 '제3차 한·중산업장관회의'에서 로봇표준인증 상호협력 방안이 최초로 논의됐으며, 이후 진흥원과 상하이전기과학연구소(SEARI)·중국검험인증그룹(CCIC)코리아컴퍼니가 공동 협력체계를 구축·마련했다.
3월 이후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동시효력이 발생하는 첫 번째 인증 항목은 '전자기 적합성 시험(EMC)'이다. 전자기기(로봇)에서 방출되는 전자파가 다른 전자기기에 간섭을 주지 않도록 전자파 방출량 규격 이하로 관리하고 성능이 제대로 유지되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시험이다.
EMC 인증은 △다른 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시험 제품에 가해졌을 때 오작동 등 장애 여부를 측정하는 '내성(EMS)' △시험 제품에서 전자파가 얼마나 방출되는지 측정하는 '방사(EMI)' 검사로 구분된다. 진흥원은 EMC 인증을 시작으로 상호인증 항목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한·중 로봇 상호인증에 따른 기대효과가 분명하다. 기업은 양국에서 중복으로 인증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EMC 인증만 하더라도 기기에 따라 수백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소요된다.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도 덜 수 있다. 진흥원이 국내 기업 제품 시험을 주관하기 때문에 시험 시료를 중국으로 먼저 배송할 필요가 없어 사업 전 현지에 기술을 노출하지 않아도 된다. 진흥원은 EMC 측정 시간을 기존보다 최대 40%까지 단축하는 기술력도 갖췄다.
이와 함께 동남아에 진출하는 국내 로봇 기업이 현지에서 각종 보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도 마련될 예정이다. 진흥원은 중국에 이어 동남아에 한국로봇센터(KRC) 구축을 추진한다. 올해 하반기까지 동남아 KRC 구축 계획을 구체화하고 내년에 정식 설립한다는 구상이다.
국내 로봇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려면 지사·연락사무소 등을 미리 마련해야 하는데 중소기업은 자금 여력 등으로 여러 어려움이 존재했다. KRC는 현지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의 공동지사·공동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필요에 따라 △계약 시 통역서비스 △현지 기업 데이터 수집 등도 지원해 '로봇 수출 전진기지'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문 원장은 “한·중 상호인증은 국내 기업이 훨씬 수월하게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활로를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중국에 이어 미국·유럽 등 국가와도 로봇 상호인증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