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격화에 나침반 잃은 '디지털세 초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9일부터 열리는 다자간협의체(IF) 총회에서 디지털세 초안을 도출한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국가 등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묘안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28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OECD 등 136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협의체인 '벱스(BEPS) 이행체계'는 29~30일 양일 간 열리는 총회에서 디지털세 기본 골격을 내놓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이번 IF총회에서 OECD가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우선 디지털기업의 국가 내 사업활동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근거해 과세권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OECD가 이를 충족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136개국 합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OECD는 '초과이익' 개념을 도입하고 영업이익이 통상이익보다 많은 기업에 디지털세를 매긴다는 구상을 세웠지만 영업이익률 기준이 제시되지도 않았다.

또 미국이 제안한 '세이프하버(Safe-harbor regime)'가 수용될지도 쟁점이다.

세이프하버는 기존 룰과 새로운 룰 중에서 유리한 것을 택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미국은 글로벌 IT 대기업들에 대한 디지털세를 선택적으로 과세하자고 제안하자 프랑스가 이를 거부했다

반면에 디지털세와 유사한 세금 체계를 도입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모두 글로벌 매출 7억5000만유로(약 1조원)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매출액을 기준으로 과세한다는 것은 디지털기업의 진출국에서의 기업활동과 재무제표가 모두 공개돼야 해 미국이 이에 동의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한편 지난 24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폐막한 WEF 연차 총회에서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등 글로벌 IT 대기업을 겨냥해 프랑스가 도입키로 한 디지털세 과세가 1년간 보류됐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등 일부 국가들 간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영국은 “4월부터 디지털세를 도입할 것”이라며 “만약에 글로벌 해법이 찾아진다면 (영국 단독 부과는) 폐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등도 디지털세를 자체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OECD는 디지털세에 대한 글로벌 합의가 있을 때까지 특정 국가가 단독으로 도입하는 것을 미뤄야 한다고 밝혔다.

만일 OECE 최종안과 과세체계가 다를 경우 환급을 해서라도 디지털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과세로 인해 타격을 입을 지도 쟁점이다. 특히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의 세 부담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 디지털세 최종안이 나오지 않더라도 일부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디지털세를 올해부터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성수 법무법인 양재 변호사는 “OECD는 사실상 G7국가 중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이 주축이 돼 이끌어가고 있다”면서 “이들 국가가 주도해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 우리정부가 참여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무역전쟁 격화에 나침반 잃은 '디지털세 초안'


유재희기자 ryu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