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봉 잡은 날...한국영화, 새역사 썼다

각본상·국제영화상·감독상·작품상
기생충,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
92년 아카데미 역사까지 새로 써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등 4관왕에 올랐다. 사진=연합뉴스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등 4관왕에 올랐다. 사진=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4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제작한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생충'은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권위인 작품상을 필두로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4관왕을 차지했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역사를 완전히 새로 썼다. 비영어 영화로는 처음으로 최고상에 해당하는 작품상을 탔다. '마티' 이후 64년 만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차지하는 기록도 남겼다.

아시아계 작가가 아카데미 각본상을 탄 것도 '기생충'이 최초다. 외국어 영화로는 2003년 '그녀에게'의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이후 17년 만에 각본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출품을 시작으로 꾸준히 아카데미상에 도전했지만 후보에 지명된 것도 수상에 성공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봉준호 감독은 각본상 발표 이후 무대에 올라 “국가를 대표해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 상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봉 감독과 각본을 함께 집필한 한진원 작가도 “미국에 할리우드가 있듯이 한국에는 충무로가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 E&A 대표는 작품상 발표 후 무대에 올라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이는 기분이 든다”면서 “이런 결정을 해 준 아카데미 회원들의 결정에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무대에는 이미경 CJ 그룹 부회장도 직접 올랐다. CJ 자회사인 CJ ENM이 '기생충' 투자 및 제작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작품상 수상 소감에서 “봉 감독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면서 “그의 머리와 그가 말하고 걷는 방식, 특히 그가 연출하는 방식과 유머 감각을 좋아한다”며 경의를 표했다. 이 부회장은 '기생충' 제작진과 동생 이재현 CJ 회장, 한국 관객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기생충'은 한국적이면서도 인류 보편적인 영화다. 한국만의 독특한 주택 구조인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가족과 저택에 사는 부잣집 가족을 통해 빈부 격차, 계급 갈등, 인간의 존엄성 등을 되짚는다.

봉 감독은 '기생충'을 계단 영화라고 설명한다. 봉 감독은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 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가파른 계단이 있다”면서 “계단을 올라가려 한 가난한 남자가 오히려 계단을 내려가면서 끝나는 이야기다. 그것이 우리 시대가 담고 있는 슬픈 모습”이라고 설파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