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점포 자산을 활용해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대형마트 경영전략이 차질을 빚고 있다. 오프라인 점포를 온라인 배송 기지로 삼아 비용 절감과 경쟁력 강화에 나섰지만 의무휴업 규제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롯데마트는 모든 점포의 물류기지화를 추진한다. 당장 다음 달부터 중계·광교점에 물류 자동화설비를 구축하기로 했다. 고객이 온라인몰에서 주문한 상품을 인근 점포에서 빠르게 배송하기 위해서다.
경영 악화로 매장을 30% 정리하기로 한 롯데는 온라인 강화를 위한 자구책으로 점포 기반 배송을 내세웠다. 기존 점포를 온라인 물류기지로 활용, 큰 출혈 없이 배송 물류망을 구축한다는 복안이다.
이마트와 홈플러스도 전국 점포를 온라인 물류 거점으로 삼아 마케팅을 늘리고 있다. 이마트는 최근 청계천점 지하 1층 매대를 들어내고 컨베이어 벨트를 깔았다. 홈플러스도 전국 107개 매장에 물류설비를 구축했다.
문제는 점포 물류가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점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이 정한 대형마트 심야 영업 제한과 주말 의무휴업 규제가 점포 기반의 온라인 배송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새벽배송이 대표적이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점포 배송도 제한된다. 당연히 새벽배송 서비스 자체가 불가능하다. 마트가 잠든 사이에 규제에서 자유로운 쿠팡과 마켓컬리는 손쉽게 새벽 시장을 잠식했다.
의무휴업일 역시 마찬가지다. 한 달에 두 번 주말마다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도 멈춘다. 결국 이마트는 전국에 멀쩡한 매장을 놔두고 수천억원을 들여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지은 후에야 새벽배송 시장에 참전할 수 있었다. 그때가 지난해 6월이다. 시장에선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탄식이 나왔다.
그마저도 온라인 물류센터가 있는 수도권 지역만 새벽배송이 가능하다. 이마트의 일평균 온라인 주문 건수는 13만건이다. 그 가운데 점포에서 담당하는 5만건의 주문이 시간 제약을 받는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규제에 막혀 아직 새벽배송 첫발조차 제대로 떼지 못했다. 이커머스 전문업체와 갈수록 벌어지는 간격에 만회 기회조차 요원하다
대형 유통사 입장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단순 불리한 수준이 아니라 숨통을 움켜쥐며 기업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반토막 났고, 롯데는 살아남기 위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역차별 논란이 일자 마트 의무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은 가능하게 하자는 내용의 유통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소관 위원회 심사 단계에 멈춰 있다. 국회와 정부는 대기업의 영업시간 확대에 대체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점포를 활용한 온라인 배송의 제한을 없앨 경우 점포가 위치한 지역 중소상인의 매출·상권을 흡수할 우려가 있다고 봤다. 마트가 아닌 외부 물류센터 등 별도 시설을 통해 배송하면 가능하다는 원론 입장만 고수했다.
법제처의 유권해석 역시 의무휴업일에 대규모 점포인 마트의 물건을 배송할 수 있다면 실제 영업하는 것과 사실상 동일한 효과를 낳는 만큼 의무휴업제도 취지에 반한다고 정리했다.
업계 관계자는 “마트가 통신판매사업자로 등록했다 하더라도 휴업일에 점포를 통해 물건을 배송할 경우 유통법 제12조의2에 따른 의무휴업 명령을 위반한 행위가 된다”면서 “온라인·모바일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구분이 사실상 사라진 가운데 영업 기준만 구태를 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