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확산으로 유통업계가 수립한 올해 투자계획도 전면 수정 가능성이 높아졌다. 가뜩이나 소비심리가 가라앉은 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예정된 투자액을 대폭 하향 조정하거나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그룹 등 유통 대기업 3사가 예고한 올해 예상 투자액은 총 2조5000억원 규모다. 지난해 부진한 실적을 거둔 이들 업체는 올해 대규모 투자로 반등의 초석을 마련하려 했지만 연초부터 감염병 변수에 직면하며 초기 계획이 뒤틀렸다.
점포당 매출 규모가 큰 백화점들은 확진자 방문으로 줄줄이 임시 휴업하며 매출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국내 백화점 2월 매출은 2000억원 이상 감소할 전망이다. 유통업계 전체 매출 손실만 최소 5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당장 유통업 전반에 후폭풍도 불가피하다. 롯데쇼핑은 작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백화점 5754억원, 할인점 1887억원 등 올해에만 7641억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수립했다. 기존점 투자를 통해 매출을 확대한다는 복안이었지만 점포 구조조정과 코로나에 따른 매출 감소로 구상에 차질이 예상된다.
작년 853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롯데쇼핑은 200여 곳을 폐점하기로 했다. 사업 효율화에 돌입했지만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이미 본점을 비롯한 백화점 3개점이 휴업으로 타격을 받았다. 1분기 어닝쇼크가 점쳐지면서 기존 사업계획도 원점에서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마트도 마찬가지다. 당초 할인점과 전문점, 온라인 신사업 등에 1조2018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작년 영업이익이 67.4% 감소하며 올해 투자규모를 8450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 투자 계획도 재조정이 불가피하다. 이마트는 최근 휴업으로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에 40억원이 넘는 손해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투자를 늘리기엔 재무 부담이 만만치 않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이마트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하향 조정했다. 대규모 투자에 따른 차입금 증가를 주된 요인으로 꼽았다.
이마트의 작년 말 차입금은 약 7조원으로 전년(5조7000억원) 대비 2조3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차입금 비율이 6배를 웃돌면서 시장 안팎에 부정적 시그널이 감지됐다. 코로나 타격에 맞서 외형성장은 포기하고 경영 효율화에 전력투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투자계획을 수정해야 하지만 불투명한 시장 변수로 인해 새 청사진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며 “당분간 숨죽이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올해 장기적 수익기반 구축을 위해 4035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세웠지만, 이번 사태로 일부 재검토에 들어갈 예정이다. 올해 아울렛 2개점과 내년 백화점 1개점 신규 오픈을 앞두고 있는 현대백화점도 남아있는 4501억원 투자 외에 추가적인 투자 여력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신용평가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 저하된 수익구조가 고착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