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경희대 캠퍼스. 학생증을 미처 가져오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학생이 단과대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돌아갔다. 주출입구 한 곳을 제외한 건물의 모든 문이 굳게 잠겨 있다. 닫힌 철문 위에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출입카드 소지자만 입장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다른 단과대학 건물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대학의 '심장'격인 도서관은 아예 폐쇄됐다.
코로나19에 대학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중국인 유학생을 통한 코로나19 전파를 걱정하던 대학은 이제 내외국인 막론하고 사람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얼마 전만 해도 중국에서 갓 입국한 중국인 유학생의 도서관 이용 제한을 권고하던 대학이 아예 도서관 문을 닫았다. 지역사회 감염을 막는 것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A대학 총장은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걱정보다 이제 우리나라 학생을 통한 코로나19 전파 가능성이 더 커졌다”면서 “최근 외부인이나 학생이 방문증 및 학생증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은 모든 문을 닫았다. 많은 학생이 모이는 대학 건물은 관리가 어려우니 그냥 폐쇄하는 쪽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경희대, 광운대 등이 학교 도서관 문을 걸어 잠갔다. 성균관대는 국가고시 준비생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일반 학생은 이용할 수 없다. 서울대는 일반인에게 개방한 열람실을 폐쇄했다. 연세대는 도서관 열람실 자리를 한 칸씩 띄워서 앉게 했다. 고려대도 도서관 열람실 일부를 닫았다. 서울대는 도서관 이용 시간을 대폭 줄였다.
대다수 대학들이 일반 건물 주출입구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폐쇄하고 열 감지 카메라를 구비하는 등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대학은 학부 차원에서 캠퍼스 출입은 통제하지만 대학원 실험실은 자율 운영한다. 실험실 특성상 어쩔 수 없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될 위험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연구 실험은 장비가 없는 집에서 진행하기 어렵고, 실험실마다 인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율로 운영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개강이 지연되면서 온라인 강의의 중요성이 높아졌지만 체계를 갖춰 준비하는 대학은 소수에 불과하다. 세부 지침과 경험 부재로 대부분 다른 대학을 지켜보면서 따라하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대학 교수는 “학교 본부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라는 방향성만 전달됐을 뿐 구체화해서 어떻게 온라인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아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대학은 대부분 개강을 1~2주 연기했다. 개강 이후에도 당분간은 원격 강의를 한다. 교육부는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등교수업이나 집합수업을 하지 않고 원격수업, 과제물 활용수업 등 재택수업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대학은 전체 강의 가운데 온라인 강의가 20%를 넘으면 안 된다는 규정 때문에 온라인 교육 준비가 미흡한 상황이다.
높은 수준의 온라인 강의가 담보되지 않으면 등록금 인하 요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국 대학 총학생회 연대단체인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가 대학생 1만2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83.8%가 코로나19에 따른 개강 연기와 원격수업 대체 기간의 대학 등록금 반환에 동의했다. 온라인 강의가 단순한 녹화 재생을 넘어 양방향 토론, 국내외 원격수업 등 에듀테크를 활용한 교육 혁신 수단으로 발전해야 하는 이유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