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이 공수표로 돌아갔다. 인터넷은행 대주주 한도 초과 지분 보유 승인 요건을 없애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테크핀을 주도할 기회가 또다시 무산됐다. 케이뱅크를 비롯해 금융산업 혁신을 내건 대형 ICT 기업은 좌절했다.
5일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현행 인터넷은행법은 ICT 주력인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가 인터넷은행 지분을 기존 보유 한도 4%를 넘어 34%까지 늘릴 수 있게 허용한다. 단 최근 5년 이내 금융 관련 법령과 공정거래법, 조세범 처벌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등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KT는 지난해 3월 케이뱅크 지분을 34%로 늘리겠다며 금융 당국에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신청했지만 이 조항으로 말미암아 좌절됐다. 그러나 인터넷은행법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면서 본회의 통과도 확실시된 분위기였다. 그러나 일부 의원이 'KT특혜법'이라는 프레임을 내걸며 분위기는 이상하게 흘러갔다.
인터넷 금융산업 육성과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여부 논란이 표결 전 토론에서 이어졌다. 통과 찬성 측은 인터넷전문은행법이 현 정부의 인터넷은행 육성 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또 정보기술(IT) 관련 기업은 독과점 특성으로 인해 공정거래법 적용이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설명했다. 반대 측은 KT에 특혜를 줘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법안은 표결에 들어가 재석 184인, 찬성 75인, 반대 82인, 기권 27인으로 부결됐다. 금융-핀테크 간 장벽을 허물고 서비스 혁신 주춧돌이 될 또 한 번의 기회가 국회에서 날아간 셈이다.
표결 전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추혜선 정의당 의원,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반대 의견을 피력하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인터넷은행 특례법은 논의만 4년째 끌다가 공수표가 됐다. 이날 부결 이후 미래통합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이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다음 임시국회 회기 처리를 추진하기로 했으나 총선 등 변수가 많다.
법 개정을 낙관해 온 케이뱅크는 유상증자 추진은 물론 서비스 영위 자체가 불가능한 '식물 은행'이 될 공산이 커졌다. 케이뱅크는 인터넷은행법 통과 후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을 확충하고, 다양한 혁신 서비스를 준비해 왔다.
강력한 '통신+금융' 인프라를 활용해 마이데이터 사업은 물론 자체 신용평가시스템(CSS)을 구축, 활용할 계획이었다. 데이터 3법 통과에 따른 마이데이터 시장에서 KT, 비씨카드, 스마트로(VAN) 등 여러 계열사를 활용한 신사업까지 검토했지만 본회의 부결로 직격탄을 맞게 됐다.
특히 새롭게 개발한 신용평가 인프라를 바탕으로 중금리 대출은 물론 비대면 기반 아파트 담보대출, 간편결제, 송금, 카드사업 등 협업 금융 상품을 대거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사업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해 KT와 케이뱅크는 자체 인터넷은행 모델을 몽골에 수출하기로 했다. 이른바 IT신남방 정책이다. 이 프로젝트는 KT가 보유한 통신 기술과 케이뱅크 비대면 기반 금융 기술을 결합, 몽골에 컬래버레이션(합작) 모델을 수출한다. 다른 금융사와 달리 IT로 금융 경쟁력을 차별화했다.
케이뱅크는 “인터넷은행이 단기간 막대한 자본금을 투입하고 장기간 기다려야 하는 인프라 사업”이라면서 “이 법이 KT특혜법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평가 절하되는 건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번 부결로 케이뱅크뿐만 아니라 네이버, 카카오 등도 금융사업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