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만명이 거주하는 울산광역시는 우리나라 최대 석유화학산업단지가 들어선 곳이다. 울산석유화학단지와 온산국가산업단지에는 국내 대형 석유회사와 1100여개 관련 기업이 모였다. 약 827만㎡에 이르는 부지에 정유와 유류비축, 중화학, 펄프 공업기업이 즐비하다. 대규모 화학단지인 만큼 화학물질 사고로 인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곳이다. 산업단지 주변 반경 10㎞이내에 거주하는 70만 울산시민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코로나19로 대면 점검이 어려워지자 언택트(비대면) 시대에 걸맞게 첨단기기를 도입, 사고 예방에 나섰다. 전자신문은 환경부의 점검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지난 23일 울산통도사역에서 40분가량 차로 달려 도착한 울산 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에는 환경부 소속 45인승 버스 1대와 카니발 차량 2대가 늘어서 있었다. 차량에는 '코로나19극복 사회적 거리 유지하기. 화학사고 예방을 위한 실시간 화학물질 점검 차량'이란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송용권 환경부 화학안전과장은 “코로나19로 대면 점검이 어려워져 최근 원거리 영상탐지차량(RAPID) 등 첨단 장비를 활용해 주요 화학시설과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원격감시와 순찰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카니발 차량에 설치된 RAPID는 환경부가 3개 산단지역 합동방제센터에 배치한 신형 첨단기기다. RAPID는 최대 2㎞반경에 있는 화학물질 누출을 탐지한다. 화학사고시 유해한 사고물질 69종 중에 63종을 탐지한다.
RAPID가 적외선을 지속적으로 쏘면 각 물질마다 고유한 파장과 분자 진동하는 특성을 잡아내 이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카메라와 센서에서 찾아낸 데이터는 차량에 비치된 노트북으로 전해져 해석하고 고유 탐지물질을 식별하고 농도를 분석한다. RAPID를 탑재한 차량이 15㎞가량 저속으로 움직이면 상단에 있는 카메라와 센서가 360도 회전하면서 실시간으로 대기상황을 점검하는 식이다. RAPID는 현재 울산을 시작으로 시흥, 여수 산단에 배치됐다.
차량에는 이동식 열화상 적외선 카메라를 배치해 화학물질을 교반·혼합하는 화학 공정이 있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반응탱크, 연결배관 등을 측정하고 이상 고온 발열 여부를 확인한다. 환경부 직원이 내부 부식을 확인하면 이를 기업 담당자에게 전달해 사고 예방에 나선다.
송 과장은 “RAPID가 반응하면 이미 사고가 난 상황”이라며 “미연에 대처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원거리 탐지 뿐만 아니라 열화상 적외선 카메라를 활용해 사업장 외부에서 탱크와 연결 배관도 살핀다”고 말했다.
이날 방문단은 차량 3대로 온산국가산업단지를 돌며 상황을 점검했다.
합동방재센터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차량 3대가 동시에 움직이는 날은 적고 한 대씩 운행해 온산국가산업자와 울산석유화학단지를 차례로 돌며 이상 여부를 점검한다”고 소개했다.
RAPID가 화학물질 농도를 분석한다면 현장축정분석차량인 45인승 버스는 가스크로마토그래피 질량분석기(GC/MS), 적외선분광기(FT-IR), 분광광도계(UV-VIS) 등 분석장비와 대기시료 포집장비를 갖추고 정밀 점검한다. 염소, 암모니아, 불산, 불화수소, 포스핀, 아르신, 폼 알데하이드, 시안화수소 등 100여종이 넘는 유해물질을 탐색한다. 대표적으로 포스겐, 염화비닐, 염화메틸 성분을 찾아낸다. 일례로 포스겐은 화학작용제로 쓰이는 물질로 독성이 강해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 또 폴리염화비닐 재료인 염화비닐은 인화성이 있고 증기와 공기를 섞을 경우 폭발위험성이 크다. 냉매제로 쓰이는 염화메틸은 지구온난화 주범이다. 대부분 사고 위험성이 큰 물질이다.
뒤늦게 RAPID를 활용한 이유를 묻자 송과장은 “당초에는 사고대응장비로 도입되었으나, 담당자가 발상을 전환해 평상시 사고예방을 위한 점검업무에도 활용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해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첨단설비가 도입되면서 방재센터 소속 직원 업무도 효율성이 높아졌다. 합동방재센터 관계자는 “RAPID 장치가 없을 때에는 육안이나 열화상카메라 등에 의존해 유해물질을 찾았다”면서 “첨단기기가 도입되면서 점검 시간이 줄어 본업무인 화학물질관리 인허가 사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면 접촉이 많은 업무인 만큼 기업을 찾으면 해당 기업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확산 될 때는 얼굴을 맞대야 하는 직원으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데 원격장치가 도입돼 대면 접촉을 줄이면서도 안전을 꾀하는 것도 장점이다.
환경부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환경 감시에 첨단 장비를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송 과장은 “첨단 장비를 활용하면 대면 접촉을 줄여 직원 업무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대면에 따른 기업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서 “앞으로도 첨단 장비를 활용해 사전에 국민안전을 위협하는 유해물질로부터 사고를 예방하겠다”고 강조했다.
울산=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