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세계 1위 네트워크 장비 업체 시스코시스템즈와 인터넷 공룡 구글의 반도체 칩을 만든다. 설계부터 생산까지 반도체 제조 전 과정을 삼성전자가 맡았다. 2030년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시장 1위를 목표로 내걸고 육성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에 탄력이 붙고 있는 것으로,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의 위상이 높아질지 주목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미국 네트워크 장비 업체 시스코의 차세대 칩을 수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안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올해 초 차세대 통신 네트워크와 연관된 칩 개발을 시스코로부터 수주했다”면서 “현재 칩 설계 등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스코가 삼성에 맡긴 반도체는 네트워크 액세스 칩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미국 정보기술(IT) 공룡 구글에서도 복수의 칩 제조를 수주했다. 구글이 의뢰한 반도체는 스마트폰 등 기존 IT 기기에 들어가는 프로세서가 아닌 인체 움직임을 측정하는 센서와 전례 없던 새로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들 글로벌 기업의 차세대 반도체를 수주하면서 생산에 그치지 않고 설계까지 담당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통상 파운드리는 설계가 완료된 고객사의 칩을 위탁 생산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삼성은 다른 접근법을 폈다. 그동안 축적한 칩 설계 능력을 적극 활용하는 카드를 꺼낸 것이다.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기술과 기능을 설계 단계에서부터 '맞춤형'으로 제공, 위탁생산(파운드리)까지 확보하는 전략이다. 기존 전통의 파운드리가 고객사 칩 '양산'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삼성전자는 자체 설계 인력을 활용, 설계부터 양산까지 전 과정을 맡아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궁극적으로는 '퓨어 파운드리'를 지향하지만 과도기 시점에서 경쟁사와는 다른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 칩 제조 전 과정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삼성전자가 시스코, 구글과 맺은 계약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스코는 연매출이 519억달러(약 62조원)에 이르는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 업체이고 구글은 검색과 유튜브 등 인터넷 서비스를 기반으로 스마트폰, 인공지능(AI) 스피커, 증강현실(AR) 글라스 등 하드웨어(HW) 사업을 강화하고 있어 삼성 파운드리 실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측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은 상승세에 있다.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에도 파운드리 사업부는 지난 2분기 4조원 안팎의 매출로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7나노 이하 미세공정 기술을 확보하는 등 기술 경쟁력을 갖추면서 수주가 늘어나는 모습이다. 시스코, 구글에 앞서 테슬라의 자율주행차량용 칩도 수주했고 페이스북이 준비하고 있는 차세대 증강현실(AR) 칩 생산을 도맡기도 했다. 차세대 반도체 양산에 차질을 겪고 있는 인텔 반도체의 삼성 수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7나노 이하 미세공정 기술을 확보한 곳은 전 세계를 통틀어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TSMC는 점유율 50%가 넘는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이고 삼성전자는 점유율 20% 안팎의 다소 격차가 있는 2위다. 그러나 최근의 상승세에 견제가 늘어나는 분위기다. 지난달 한 대만 매체는 삼성전자가 수율 부진에 퀄컴 차세대 칩 양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5나노 양산은 차질이 없다”면서 “기존 계획대로 수율을 개선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삼성전자 측은 시스코와 구글 파운드리 수주에 관해 “고객사와 관련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