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네트워크 장비 국산화율이 30%에 머무르는 것은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처한 현실을 드러낸다. 정부는 세계 최고 초연결 인프라를 확보하겠다며 정책을 추진하지만, 정작 직접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네트워크 장비는 외산 위주다. ICT 강국이 아닌 'ICT 소비' 강국이 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공공부문 전반의 대대적인 인식 개선과 더불어, 평가 제도 세밀화를 통한 국산장비 활성화 유도 정책이 필요하다.
◇국산화 저조 원인은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공공부문 네트워크 장비 국산화율은 2017년 30.6%에서 2019년 33.8%로 10%포인트(P)가량 증가했다. 상당한 규모가 증가했다고 볼 수 있지만, 옛 미래창조과학부가 내세운 2017년 50% 목표에 크게 못미칠 뿐만 아니라 공공 부문 역할을 고려하면 미흡한 수준이다.
공공부문 장비 국산화가 저조한 이유로 공공부문 인식 부족과 네트워크 산업 구조가 손꼽힌다. 공공기관의 전문성 부족과 고질적인 외산 선호 현상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국산 장비기업은 시험 인증제도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률 개정으로 1월부터 공공기관에 장비를 공급하려면 국가보안연구원으로부터 '보안기능시험인증서'를 받아야 한다. 국산장비기업은 인력부족 등 문제로 인증 과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입찰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전언이다. 국내기업이 보다 편리하게 대응하도록 개선책이 요구된다.
◇제도·인식 개선·R&D 지원 필요
글로벌 시대에 국산화율을 일방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국산기업은 경쟁력 차이를 차치하고 공공기관에 진출하기 위한 장벽 자체가 높은 게 현실이다. 공정한 경쟁을 위한 룰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1차적인 책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IT네트워크 구축운영지침' 고시에 따라 공정한 경쟁환경을 조성하도록 장비 도입 시 공정한 평가 기준 등을 규정했다. 이같은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점검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공공기관으로서 역할을 고려한 대대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공부문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민간과 같이 고스펙, 저가입찰 등 일반적인 시장의 기준에 맡겨두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정보 보호와 국가산업 활성화라는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이와 관련, 조달청은 4월부터 '조달청 협상에 의한 계약제안서 평가 세부기준'을 통해 공공기관이 국산 장비를 사용하는 입찰업체에 가점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장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 같은 제도에 대해 충분한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
국산 네트워크 장비 기업은 무선분야의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중소·중견기업 위주로 글로벌 기업에 비해 연구개발(R&D) 역량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국산 네트워크 장비 기업은 27조원에 이르는 총 R&D 예산 중 네트워크 장비 분야 확대와 더불어, 기업과 활발한 소통을 통해 맞춤형 수요를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국네트워크산업협회(KANI) 관계자는 “공공기관은 공공데이터가 흘러다니는 곳으로, 산업활성화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체계적인 육성전략이 필요하다”면서 “현행 활성화 제도를 점검·보완하는 동시에 맞춤형 R&D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3년간 네트워크 장비 시장 규모 및 국산화율(단위: 백만원, %)
(출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