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200년께 성립돼 약 3000년 동안 지속한 이집트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긴 6650㎞의 나일강 유역 중심으로 발달했다. 나일강의 주기 범람은 강변의 토지를 비옥하게 해 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예상외로 큰 수위 상승으로 농지를 수몰시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집트에서는 강의 수위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는 자연스럽게 천문학 발달로 이어지게 됐다. 강의 수위는 결국 하늘의 기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고대 이집트인들도 안 것이었다.
물의 흐름을 연구하는 수문학(水文學)과 별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천문학(天文學)이 모두 글월 문(文)자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고대 중국에서도 비슷하게 인식한 것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기후변화가 점차 가속화하고 있는 오늘날 치수정책은 다시 한 번 '하늘의 뜻'에 맞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올여름 중국과 한국 등을 휩쓴 대규모 홍수는 이전과 전혀 다른 강우 패턴을 보여 줬고, 이는 앞으로도 더욱 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9월 환경부에서 발표한 자료에서는 21세기 후반에 연 강우량이 최대 17.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고, 기상청이 매년 발표하는 '한반도 기후예측' 자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인류는 '익숙하지 않은 미래'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강우량의 지역별·계절별 편차 등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댐과 하천 등의 설계에 사용되는 홍수량을 증가시키고, 하천 제방 치수안전도를 상승시키는 발 빠른 대처를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댐과 하천 중심 홍수방어체계가 한계에 부닥쳤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강물이 하천 변 지역으로 흘러 들어가서 저류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에 따른 홍수 위험 증대에 대처하기 위해 댐·제방 등과 같은 기존의 인공구조물(그레이 인프라)과 함께 습지·토양·식생 등 자연구조물(그린 인프라), 홍수터·하도 등 활용구조물(블루 인프라) 등을 종합 고려한 최적의 홍수방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자연기반해법(NbS)도 대두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기상의 불규칙한 변화에 맞춰 홍수방어대책도 좀 더 다변화되고 유연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환경부에서 기후위기대응 홍수대책 기획단을 구성하고 관련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홍수방지 대책과 같은 예방 정책은 만의 하나를 대비한 선제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당장 비용을 아끼려 하다가 그보다 훨씬 많은 복구 비용을 치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다른 곳에 비해 인구가 덜 밀집해 홍수특보지점에서 제외된 지방 행정구역에 대한 특보지점 확대, 정비된 비율이 낮은 지방하천에 대한 투자 확대 방안, 댐 운영과 같이 정교한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업무에 대해 교차 검증이 가능한 조직의 신설 등이 대책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
지금의 지구온난화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로 인한 재해는 반복 발생 가능성이 짙다. 그러나 이번 홍수 피해가 주는 교훈이 벌써 일반인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대홍수를 계기로 더이상 기후변화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홍수 문제를 포함한 수자원 관리에 미온 및 방어 형태의 정책 방향은 지양하고 좀 더 실행력 강한 미래 지향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기후변화 시대에 인류 역시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지혜로운 방법을 찾는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배덕효 세종대 총장 dhbae@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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