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추위 타는 전기차 '저온 주행거리' 묻지마 판매

국내 판매 중인 모든 차량 미표시
보조금 지표지만 고지 의무 없어
상온 주행시와 최대 40% 차이나
소비자 불만...정부 "개선안 검토"

국내 자동차 제조·수입사들이 전기차를 판매할 때 저온 환경 주행거리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 인증 기준만 있고 고지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상온과 저온 주행거리를 알려서 소비자 권익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왼쪽)과 아이오닉 일렉트릭.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왼쪽)과 아이오닉 일렉트릭.

사계절 기온 차가 큰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을 반영한 상온 및 저온 주행거리 인증 제도는 정부가 집행하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의 주요 지표다. 그러나 대다수 소비자는 저온 주행거리를 모른 채 구매한다. 정부 관련 부처들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대응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일 전자신문이 국내 판매 전기차의 카탈로그와 가격표 등을 살펴본 결과 모든 제조사가 상온(영상 20~30도) 주행거리만 넣고, 저온(영하 7도) 주행거리는 표기하지 않았다. 차량에 부착하는 에너지소비효율 라벨에도 상온 주행거리만 표기했다.

전기차는 배터리 특성상 상온과 저온 주행거리 차이가 10~40%에 이른다. 지난 2019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정부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 규정에 따르면 저온 주행거리는 상온 대비 60% 이상이어야 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다. 정부는 여름과 겨울 기온 차가 심한 국내 기후 환경을 고려, 효율성이 높은 전기차를 개발하도록 규정을 마련했다.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 가격표. 상온 주행거리만 표기하고 있다.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 가격표. 상온 주행거리만 표기하고 있다.

환경부 인증 자료에 따르면 주요 전기차의 상온 대비 저온 주행거리는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 74~90.2%, 기아 니로 EV 78~90%, 테슬라 모델3 60~61% 수준이다. 겨울철 주행거리가 과도하게 줄어드는 전기차의 이용자 불만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그러나 제조사들은 소비자에게 이 정보를 고지하지 않고 있다.

이용자들의 주행거리에 대한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제조사가 표기한 상온 주행거리를 일반적 주행 가능 거리로 알고 구매했지만 영하권으로 떨어진 날이 많은 올겨울에 주행거리 차이가 더 크게 부각됐다.

지난해 테슬라 모델3를 구매한 조원상씨는 “지난해 가을에 완충하면 400㎞ 이상을 달릴 수 있었는데 올겨울 주행거리가 250㎞ 수준까지 떨어졌다”면서 “다른 이용자도 기온에 따른 주행거리에 대한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기아 니로 EV의 에너지소비효율 라벨. 상온 주행거리만 표기했다.
기아 니로 EV의 에너지소비효율 라벨. 상온 주행거리만 표기했다.

쉐보레 볼트 EV를 3년째 운행하고 있는 김서우씨는 “겨울철 주행거리가 봄이나 가을철보다 100㎞ 이상 줄었고, 해마다 그 격차도 커지고 있다”면서 “구매 과정에서 저온 주행거리에 대한 설명은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정이어서 수입사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최근 아우디는 전기차 e-트론의 상온과 저온 주행거리 차이가 1㎞에 불과한 사실이 인증 오류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보다 앞서 메르세데스-벤츠 EQC도 처음 국내 인증 당시 저온 주행거리가 미달하면서 보조금을 받기 위해 재인증을 받은 사례가 있다.

저온 주행거리가 보조금의 주요 지표인 만큼 소비자가 기온 차에 따른 에너지소비효율을 인지할 수 있도록 상온과 저온 주행거리 표기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저온 주행거리 규정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허위·과장 광고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저온 주행거리 미표시로 소비자 피해가 있다면 관련 법안을 살펴보고, 관계 부처 간 대응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에너지소비효율은 환경부, 산업부, 국토부 3자 간 협의를 통해 고시하고 있다”면서 “전기차 저온 주행거리 표기에 문제가 있다면 살펴보고, 다른 부처들과 협의해서 개선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단독]추위 타는 전기차 '저온 주행거리' 묻지마 판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