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8일 지난 수개월 동안 미국 애플과 진행한 전기·자율주행차(애플카) 협력에 대해 “자율주행차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공시했다.
지난달 8일 현대차가 애플과 자율주행 관련 협업을 추진한다는 보도에 대한 해명 이후 1개월 만에 나온 재공시다. 공시 직전까지도 현대차와 기아가 지난달 공시한 “아직 결정된 바 없다”는 발표를 예상했지만 이날 공시는 이런 예측과 배치된다. 업계에서는 논의 중단과 숨 고르기라는 갈린 시각이 맞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당사는 자율주행 전기차 사업 관련 다수 해외 기업과의 협업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공시한 바 있다.
지난 공시에서는 애플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애플과의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현대차그룹 공시만 놓고 보면 앞서 흘러나온 애플과의 협력 일시 중단설이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계에서는 아직 양측의 협상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고 있진 않다. 양측의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거나 협상 보안을 위한 '할리우드 액션'일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이다.
현대차그룹이 공시에서 '자율주행차 개발에 대한 협의'로 한정한 만큼 전기차 협력 자체를 중단한 것은 아닐 것으로 분석되는 이유다. 현대차와 애플이 각각 자체 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자율주행이 아닌 전기차 부문에서만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다.
현대차그룹은 자체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보유한 데다 미국에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기아차 조지아주 공장이 해외 전기차 생산기지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애플은 현대차그룹이 자사가 계획한 시기에 맞춰 자동차를 실제 생산할 수 있는 능력과 요건을 모두 갖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애플카 프로젝트는 초기 단계이며, 출시 시기는 3~4년 이후로 점쳐진다. 이에 따라 애플이 여론이 잠잠해진 후 협의를 재기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현지 언론들도 논의된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현재 상황과 이후 행보에 대한 반응은 갈렸다.
블룸버그통신은 5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이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한 현대차·기아와의 논의를 최근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수년간 개발 프로젝트와 공급업체 정보를 비밀에 부쳐 온 애플이 전기차 관련 논의 소식이 알려지자 화가 난 것이 협력 중단의 이유로 분석했다.
같은 날 새벽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아차가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애플카' 조립생산을 위해 잠재적 파트너들과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기아차와 애플의 자율주행 전기차 협력 제안이 수십억달러 규모(약 3조4000억원)의 투자 방안을 포함하고 있지만 아직 협상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CNBC도 지난 3일 애플과 현대·기아차와의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근접했지만 아직 최종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방송했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현대차는 자율주행차 핵심 솔루션으로 엔비디아를 쓰지만 애플은 자체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어서 양사의 자율주행 협력 확률은 원래부터 낮았다”면서 “이번 공시에서 현대차가 '자율주행차'에 못을 박은 만큼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애초 양측 협의는 전기차는 현대차, 자율주행은 애플이 각각 맡는 구도였다. 이런 형태는 진행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게 박 교수의 해석이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