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의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 대한 망 이용대가 부과를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없고 망 이용대가 부과가 정당하다는 주요국 법원과 정부 결정이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망 이용대가는 공정거래 규범을 준수해야 하는 민간 자율 계약 영역으로 망 중립성 규제와는 무관하다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로 입증되고 있다.
일부 CP 진영과 전문가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망 중립성 관련 규제가 발신자 종량제 방식 망 이용대가(Termination Fee)를 금지한다며 이를 우리나라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에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CP와 통신사가 망을 연결한 채 데이터 트래픽 교환비율에 따라 일부 비용을 정산하는 '페이드 피어링'은 인정하지만 트래픽에 따라 요금이 높아지는 종량제 방식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넷플릭스 역시 SK브로드밴드와 소송에서 “통신사가 CP를 대상으로 망 이용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모든 데이터 트래픽을 차별없이 취급해야 한다고 명시한 망 중립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주요국 망 중립성 관련 규제에서 망 이용대가와 관련 내용은 전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망 중립성 규제인 '오픈 인터넷 규칙' 전문을 분석한 결과 망 이용대가에 관한 언급은 전무했다. 미뇽 클라이번 전 상임위원이 부대 의견에서 “일부 CP가 망 중립성 규칙 논의 과정에서 망 이용대가(Access Fee) 전면 부과 금지를 요구한 사실이 있다”고 언급했지만 실제 규칙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오픈 인터넷 규칙은 웃돈을 낸 CP에 보다 나은 데이터 전송품질을 보장하는 '급행료'를 금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오픈 인터넷규칙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전면 폐지됐다.
유럽전자통신규제기구(BEREC)가 제정한 '오픈 인터넷' 법률에도 망 이용대가 관련 규정 자체를 명시하지 않았다. 종량제 망 이용대가, 인터넷상호접속, 페이드 피어링 등 망 이용대가와 유사한 용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BEREC이 자체 보고서를 통해 페이드 피어링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적은 있지만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EU 최초로 망 중립성 규제 법률을 도입한 네덜란드 방송통신규제기구(ACM)도 통신사가 CP의 데이터 트래픽을 차별하는 행위에 대해서만 규제할 뿐 망 이용대가 금지 또는 허용과 관련한 내용은 전혀 담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국 규제 당국과 법원이 거대 CP에 대한 정당한 망 이용대가 부과를 인정하는 추세가 뚜렷이 드러난다.
미국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은 차터 망 이용대가 부과금지 인가조건을 해제하며 “통신사는 종단에 위치한 기업이 전송하는 콘텐츠를 가입자에게 전송하며 상호 연결계약을 통해 비용을 지불 받는다”고 판시했다. 망 이용대가 지불 여부는 민간 자율 계약으로 법률을 통한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 판결이다.
프랑스 법원은 오렌지가 코젠트에 망 이용대가 납부를 요구하며 망 증설을 중단한 사건에서, 오렌지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통신 전문가는 “망 중립성은 거대 인프라를 보유한 통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CP 자율성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규칙”이라며 “거대 CP에 대해서는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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