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반도체 생산 인프라를 공격적으로 늘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리더십을 확보하고 미국 내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행보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업계 공급망(SCM)에도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화상회의'에 참석해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올리며 “이것은 인프라다”라면서 “우리는 어제의 인프라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신규 반도체 팹 투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날 회의에는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을 비롯해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마크 류 TSMC 사장 등 19개 글로벌 반도체 및 미국 자동차 기업 CEO들이 참석했다.
회의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주재했지만 단연 돋보인 인물은 바이든 대통령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23명의 상원의원과 42명의 하원의원들로부터 반도체 투자를 지지하는 서한을 받았다고 소개한 뒤 “중국과 전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기다리지 않는다”면서 “미국이 기다려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이날 회의에 대해 미국 정부의 반도체 투자와 관련한 새로운 결정이나 발표 사항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극심한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를 논의하고 반도체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사항들을 점검하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설명이다.
그러나 업계는 글로벌 반도체 SCM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월 2조2500억달러의 인프라 예산 가운데 500억달러(약 56조원)를 반도체 인프라 투자에 쓰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후 미국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반도체 설비 구축에 공을 들일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우선 미국에서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팹 투자가 적극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세계 정보기술(IT) 시장에서 반도체 생산의 80%가 아시아 지역에서 진행되는 것을 고려, 바이든 정부가 이를 분산하면서 자급률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신규 공장 투자를 적극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의 대응도 주목된다. 이미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인텔이 이러한 바이든 정부의 기조에 화답했다. 최근 애리조나주에 새로운 반도체 공장 두 곳에 투자하면서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또 이에 앞서 TSMC도 애리조나주에 약 40조원을 쏟아부어 최신 5나노미터(㎚) 공장을 짓겠다는 선언을 한 바 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 2위인 삼성전자의 현지 파운드리 공장 확장 여부도 초미의 관심거리이다.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회의에 초대받은 삼성전자는 미국 오스틴에 14나노 공정의 주력 파운드리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최근 주변 부지 구입 등으로 첨단 파운드리 팹 신축 공산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의 요청과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는 삼성전자가 투자를 더욱 앞당길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현재 반도체 수급 문제 해결과 양질의 고용 창출을 끌어내기 위해 대규모 팹 증설에 집중할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