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정보 신고 시 사업자가 무조건 임시차단(게시물 블라인드) 조치를 하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인터넷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불법정보 범위가 광범위한 데다 불법정보 판단이 어려워 이용자와의 분쟁이 증가하고 업무 부담이 커질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15일 인터넷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박광온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당 법안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 묶여 있으며, 곧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정안 제44조의2 1항은 신고 시 인터넷 사업자가 임시 조치해야 할 대상을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등 '권리침해 정보'에서 '불법정보'로 확대했다. 불법정보는 음란정보, 비방, 공포심, 통신시스템 방해, 무기류 제작, 국가기밀, 국가보안법, 범죄 교사 등 광범위하다.
개정안은 인터넷 사업자가 임시차단 등을 요청받으면 20일 범위 안에서 지체없이 차단 등 조치를 하고 신청자와 정보 게재자에게 알리도록 했다. 위반 시 과징금은 매출액의 3%(100분의 3) 이하로 부과한다.
현행법에도 삭제 요청 등 이용자 보호 방안이 있지만 불법정보로 인한 이용자 피해 구제 등이 용이하지 않아 정보통신망 불법정보에 대한 임시 차단 범위를 확대한다는 게 법 제안의 취지다.
박 의원은 개정안을 발의하며 “불법정보로 인한 이용자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한 제도상의 절차를 마련하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관리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는 등 미비점을 개선해 이용자 권익 보호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업계는 불법정보의 범위가 넓고 불법성 여부 판단이 어려워 이에 대한 신고가 급증할 것으로 우려했다. 권리침해 신고는 피해 당사자가 하지만 불법정보 신고는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인터넷 업체 관계자는 “현재 권리침해 신고만으로도 연간 45만건이 임시조치되고 있다”면서 “법안이 통과되면 대응 인력을 두 배 증원해야 하는 등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용자(게시자)와의 분쟁이다. 정보 게시자는 자기 게시물이 불법정보가 아닌데도 차단됐다며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이 짙다. 표현의 자유 침해 비판도 사업자가 감내해야 한다.
최근 평상복을 입은 여성과 레깅스를 입은 여성을 몰래 촬영한 혐의에 대해 각각 무죄와 유죄 판결이 내려지는 등 불법정보에 대한 판단은 법원이나 수사기관도 의견이 분분하다.
관계자는 “불법정보는 법원도 판단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용자나 인터넷 업체는 판단하기가 더 어렵다”면서 “연예인 노출 화보나 예술작품 사진, 가짜뉴스가 아닌 합리적 의혹을 제기한 글조차 블라인드 처리되는 경우가 생기면서 분쟁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한국인터넷자율정책 기구가 주관한 관련 토론회에서도 참석자들은 임시조치 대상 정보 확대와 임시조치 강제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내놨다. 불법정보 규제는 국가가 해야 하며, 임시조치는 현행대로 권리침해 정보에 국한하는 게 옳다고 입을 모았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불법정보는 현행보다 더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개념”이라면서 “이미 연간 45만건에 이르는 차단 요청이 더 남발될 것이며,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박광온 의원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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