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도 학술지에 실은 논문을 그대로 석사 학위 논문으로 작성했어요.”
우리 협의회 사무장이 이번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기사를 보고 한마디했다. 필자 역시 과거 석·박사 학위 논문을 학술지에 같은 내용으로 지도교수, 심사위원 공저자로 발표했다. 대학 교원이 돼 지도한 대학원생 역시 박사학위 논문을 학술지에 필자와 공저자로 발표했다. 이공계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 '표절'이라는 의혹을 받는 게 당황스럽다.
'표절(plagiarism)'의 어원은 “문자를 훔치다”에서 왔다. 국제적으로 표절은 “다른 이의 아이디어, 연구 내용·결과 등을 적절한 인용 없이 사용하는 행위 또는 그 문장 자체”를 의미한다. 두 논문에 같은 저자가 있는 경우 아예 표절의 정의에 맞지 않는다. 자신의 업적을 자신이 훔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더구나 연구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이공계 석·박사 학위 논문이 학술지 논문으로 나가는 것은 적극 장려한다. 필자가 편집을 맡은 학술지에서도, 세계 모든 학술지에서도 이런 것은 마찬가지이다.
저자자격(저자표기)은 학술지마다 달라 정해진 정책을 꼭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천체물리학 분야 논문에서 저자 수가 5000명인 경우도 있다. 이 5000명이 모두 자격이 있거나 없다고 외부에서 언급할 필요가 없다. 저자표기는 저자 사이의 합의이기 때문이다. 저자 순서도 마찬가지이다. 편집인도 저자 사이의 합의를 존중하지 별도의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이다. 이번 장관 후보자의 논문에서 저자 순서 역시 학술지 편집인이 저자 사이의 합의를 존중한 것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학회에 참석하면 많은 해외 과학자가 가족과 같이 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특히 자녀들은 한국의 K-POP에 관심이 많아 꼭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해 동반했다고 하는 게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어느 국제 행사 등 가족 동반을 환영하며, 가족이 참여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과학자 역시 해외 학회에 참석할 때 가족 동반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국제 행사에 연구자 이외 가족 참석을 지역 경제 활성화 일환으로 장려하듯이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필자 역시 해외 학회에 참석할 때, 초등학교에서 해외 여행도 체험 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해 가족 동반 참석하기도 했다. 이번 장관 후보자가 국제 학회 가족 동반이 논란이 되는 것을 보니 같은 연구자 입장에서 안타깝고 이런 논란이 불편하다.
연구출판윤리의 핵심은 피험자 안전(safety of examinees)을 지키는 일이며, 표절은 일종의 저작재산권 문제이다. 해당 분야 전문가 사이에서 인정하여 전문 분야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내용 자체의 가치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우리나라는 과학 기술 수준이 전세계 최고인 국가 중 하나이며, 과학기술 발전은 국가 발전의 핵심이므로 앞으로 더 많은 과학자가 공직에 임명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런 과학계 현장과 차이가 나는 연구출판윤리 굴레를 평가 잣대로 세운다면 과학자는 공직에 나가는 것을 꺼릴 것이다. 지금의 윤리 과잉 현상이 과학자와 국민 사이 연구 환경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면 조금 더 활발한 의사소통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면, 휴일도 잊고 밤늦게까지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자, 후속 세대 연구자의 활동이 더욱더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허선 한국과학학술지 편집인협의회 회장(한림대 의대 교수) shuh@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