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반의 4차 산업혁명이 급속히 전개되고 있지만 국회에서의 AI 관련법 발의는 고작 4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 예측, 가상현실(VR), 빅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의 AI 연구개발(R&D)이 진행되고 있지만 기술 개발로 발생할 사회 문제에 대처할 입법은 지체되고 있다.
13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AI 관련 법안은 4건에 머물렀다. AI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안 의견 표명문까지 합쳐야 총 5건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2건 발의됐지만 자동 폐기됐다.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인 AI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국회에서 입법 노력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연인 간 대화를 몰래 학습시켜 개인정보 침해 논란을 빚은 AI 챗봇 이루다 사태에서 보듯이 기술은 발전하지만 제도와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미국 의회에서는 2019~2020년 1년 동안 AI 관련 법안이 151건 발의됐다. 미국은 AI 기술 선두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숫자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사진3】
21대 국회에서는 이상민·양향자·송갑석·민형배(이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AI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들 법안은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시책 마련 촉구, 정부 중심 계획 수립과 추진, 위원회 설치, 투자 확대, 거점 단지 구축과 집중 지원 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의안명은 각각 다르지만 실질적인 차별성은 미흡하다. 그나마 이상민 의원 법안은 '생명윤리' 부문을 다뤘다.
최근 5년 동안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AI 관련 과제는 대폭 증가 추세에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에서 제공한 '연도별 인공지능 관련 국가연구개발사업 현황'에 따르면 2016년 151건에서 2017년 313건, 2020년 682건으로 늘었다. 연구의 양적 확대와 함께 융합 연구가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정부의 제4차 과학기술기본계획에 맞춰 최근에는 보안기술, 복합재난 스마트 예측과 대응, 범죄·테러 통합 지능형 예측·대응, VR·혼합현실(MR) 기술 등 범용 특성에 맞게 적용 대상의 범주가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국회 입법은 하드웨어(HW) 중심 지원책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R&D의 기술 수준이나 성과 등과는 보폭이 맞지 않는 것으로 지적됐다. 여기에 AI가 사회에 미칠 윤리적·법적 영향도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유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AI 입법은 선언적 내용이 중심”이라면서 “반면에 미국은 구체적으로 군사, 안보 등 특정 분야의 발전 방안부터 미래사회 대비를 위한 검토 등 여러 관점의 입법 발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로봇의 자율성과 인간의 통제권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알고리즘 개발 과정에서 논의된 도덕적 기준을 어떻게 학습시킬지, 가치 기준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만들지 등 '도덕적·법적·사회적' 문제를 두고 논의가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AI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임에도 정치 쟁점에서 밀려 있다”면서 “국회가 입법과 함께 다양한 관점의 논의를 사회에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는 '데이터' 관련법 처리 후 AI법을 논의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실은 “산업의 쌀이 '철'이라면 디지털 산업의 쌀은 '데이터'”라면서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데이터이기 때문에 생산·거래·유통에 관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승래 의원실은 “데이터 기본법을 처리한 후 AI 법안 절차로 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