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터디 사업 놓고 속앓이하는 은행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국내 시중 은행들이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 진출 여부를 놓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커스터디 사업을 준비해왔는데 투기 열풍이 이어지면서 금융당국이 계속 부정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명계좌 발급에 따른 의무도 은행 입장에서는 큰 위험요소(리스크)를 떠안는 것이어서 가상자산 관련 사업에 대한 의사결정이 답보상태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아직 가상자산 커스터디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농협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이 사업 여부와 시작 시점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먼저 이 시장에 진출한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행보를 지켜보며 시장 흐름만 주시하고 있다.

은행권의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은 기존 구매한 가상자산에 대해 개인 키를 보관해주거나 기관투자자를 대신해 가상자산을 구매해주는 서비스를 뜻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가상자산 보관 외에 가상자산 결제와 정산, 가상자산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등 운용 업무로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이는 점점 줄어드는 은행의 수수료 수익 사업을 다시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직 가상자산 커스터디 시장이 초기 단계이고 국내에서 가상자산 투자에 실제로 뛰어든 기관투자자가 많지 않은 만큼 당장 수수료 수익 규모를 추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가상자산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기관투자자가 상당한 만큼 중장기 관점에서 이 사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은행에서 커스터디 사업 진출을 가장 고민하게 만드는 요인은 향후 불거질 수 있는 위험(리스크) 관리다. 지난 3월 시행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서는 가상자산사업자가 금융회사 등에 개설한 실명계정을 이용해 금융거래를 하도록 규정했다. 실명계정은 가상자산사업자 계좌와 해당 사업자의 고객 계좌 사이에서만 금융거래 등을 허용하는 계정을 뜻한다.

은행은 은행법 등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가 고객 예치금을 분리·보관하는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했는지, 고객 거래내역을 분리해 관리하는지를 확인할 의무가 있다.

특히 가상자산사업자가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내부통제절차와 업무지침 등을 준수하는지 확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가상자산사업자와의 금융거래 등에서 자금세탁 행위 위험을 식별·분석·평가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이 의무가 특금법상 고객확인의무를 재확인하는 차원이라고 해석했지만 은행은 당장 실명계정 발급 업무부터 위축됐다. 은행이 직접 가상자산사업자의 위험을 확인하고 평가해야 하는데 만약 실명계좌를 발급한 가상자산사업자가 자금세탁에 연루되면 은행도 처벌을 피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 때문에 커스터디 사업에 먼저 진출한 국민·신한은행은 별도 사업자와 함께 사업을 영위하는 전략을 택했다. 신한은행은 미국 디지털자산 금융서비스 기업 비트고(BitGo), 커스터디 전문기업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과 협약을 맺고 디지털자산 전반에 대한 커스터디 서비스 제공과 솔루션 공동 개발에 나섰다. 국민은행은 블록체인 기업 해치랩스,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와 합작법인 한국디지털에셋(KODA)을 설립했다. 농협은행은 블록체인 기업 헥슬란트, 법무법인 태평양과 컨소시엄을 맺고 커스터디 서비스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별도 법인을 이용해 커스터디 사업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추후 벌어질 수 있는 리스크를 기존 사업과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은행 한 관계자는 “'○○은행이 투자한 커스터디 회사'라는 시각 때문에 추후 자금세탁 이슈라도 발생하면 본 은행업에서 쌓아올린 브랜드 신뢰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며 “당장 수십억원 수익 때문에 수백억원 과징금이나 브랜드 타격을 감수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 가상자산 시장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