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AI 법률사무소] <38>AI기업 정체성 확립과 핵심가치 그리고 윤리

[이상직 변호사의 AI 법률사무소] <38>AI기업 정체성 확립과 핵심가치 그리고 윤리

1891년에 서른 살을 앞둔 미국 농업성 직원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조선인 변수(邊燧)다. 1861년 통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신문물에 눈을 떠 일본·미국·유럽에 파견되고, 농업과 화학을 공부했다.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일본을 거쳐 미국에 망명했다. 메릴랜드대에서 농학을 전공, 수석 졸업을 했지만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꿈(핵심 목적)은 무엇일까. 농업 근대화로 산업 강국 조선을 만드는 것이었다. 짧은 삶이 추구한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멸시를 견디며 선진농법을 배우고, 조선 토양에 맞는 영농기술을 혁신하며, 조선의 자신감 회복과 외세로부터의 독립이다. 그의 실험은 중단됐지만 우장춘, 김인환 등 농학자들이 뒤를 이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Environment,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이 화두다. 주주 이익만 챙기지 말고 고객, 임직원, 환경, 공동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ESG 공시의무를 부여하고 투자기관은 심사요건으로 ESG 경영을 유도한다. 인공지능(AI) 등 기술혁신기업에 대해선 정부윤리기준과 자율규제로 사회적 가치 및 규범을 준수하도록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그렇지 않다. AI 기업의 핵심 목적으로 각 기업 특유의 정체성을 선언하고 실천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핵심 목적 실현을 위한 핵심 가치도 필요하다.

[이상직 변호사의 AI 법률사무소] <38>AI기업 정체성 확립과 핵심가치 그리고 윤리

기업의 핵심 목적은 존재의 근본 이유로써 구성원에게 자신이 속한 조직의 정체성을 각인시킨다. 사람으로 보면 영혼이다. 자신이 속한 기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깨운다. 휴대폰을 설계·제조하는 A사는 '기술을 통해 인격을 고양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에 존재 이유를 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업을 하는 B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관심사와 공동체를 형성하고, 세상을 더 가깝게' 하는 데 존재 이유가 있다. 클라우드 사업을 하는 C사는 '개인과 기업이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핵심 목적 달성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 가치도 있다. 핵심 목적이 기업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라면 핵심 가치는 의사결정·행동 규칙이다. A사는 '기술을 통해 누구든지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고, 그에 필요한 교육을 하며, 환경을 지키고, 포용성·다양성·사생활 보호'를 한다고 선언했다. B사는 '사람들이 말하고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서로 연결해서 공동체를 건설하며, 모든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들의 경제적 기회를 증진'하자고 한다. C사는 '존중과 조화, 통합과 책임'을 중시하고 있다.

핵심 목적과 핵심 가치는 그 기술을 통해 손실을 보거나 핍박을 당해도 끝내 지켜야 하고, 혁신을 통해 더 높은 단계로 승화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부당한 이유로 고객 정보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 문을 닫을 각오로 지켜야 한다. 혁신은 옷을 파는 회사가 건강을 파는 회사, 자동차를 파는 회사가 여가를 파는 회사가 될 수 있게 한다.

[이상직 변호사의 AI 법률사무소] <38>AI기업 정체성 확립과 핵심가치 그리고 윤리

기업의 핵심 목적을 핵심 가치와 함께 달성하려면 구체적이고 생생한 계획이 필요하다. 그것이 비전이다. 비전은 핵심 목적과 가치 실현을 위해 필요하면 변경할 수 있다. AI는 사람의 생명, 신체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윤리적인 기획과 설계가 중요하다. AI 기업이 정체성을 핵심 목적으로 명백히 하고 핵심 가치로 무장한다면 나쁜 짓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 AI 윤리기준 100개, 1000개를 만드는 것보다 AI 기업이 각자 특유한 핵심 목적과 가치·비전을 뚜렷하게 잡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낫다.

이런 글을 하는 필자에게 삶의 핵심 목적과 가치를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변수처럼 살기엔 너무 늦었다. 당나라 시인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 가운데 '소이부답 심자한'(笑而不答 心自閑)으로 대신한다. '그저 웃음으로 답을 미루지만 마음은 한가롭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