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일 우리 앞에 닥친 경제적 어려움을 강조하고 있지만 무엇을 중심으로 어떻게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경제적 도약을 이룰 것인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 방한을 즈음해 국내 대기업이 내놓은 1000조원가량의 투자 계획과 반도체, 수소, 바이오,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미래 신사업 분야의 대대적인 일자리 창출 계획 발표는 오히려 새 정부의 산업정책이 자칫 대기업 중심과 유형자산 즉 전통적인 제조업 육성정책으로 기우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3월 말 필자가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했을 때 아부다비캐피털을 비롯한 현지 투자자가 보는 한국 콘텐츠의 관심과 블록체인 특히 대체불가토큰(NFT) 분야의 투자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 '미나리'로 이미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감독상을 수상해 변방의 경계를 뛰어넘었다. 이어 5월 14일부터 15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코로나19 이후 유럽 최대 K-팝 페스티벌인 'KPOP. FLEX'의 호황은 K-팝이 음악을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K-컬처는 한국인만이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향유하는 문화가 되고 있다. 문화 예술계 인사 상당수는 자신의 문화양식을 메타버스와 NFT를 어떻게 연동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카카오, 네이버, KT 등 국내의 플랫폼 기업도 앞다퉈 문화자산 디지털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블록체인 플랫폼 '솔라나' 개발사인 솔라나 재단과 솔라나 생태계 투자 펀드 솔라나벤처스가 한국 웹 3.0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12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고 밝혔듯이 미국 금리 인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악재에도 한국 문화콘텐츠와 디지털자산 시장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식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은 취임식에서 “과거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메타버스, 빅테크, 가상자산 등은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됐다”며 “시장 선진화와 민간의 혁신을 저해하는 요소는 없는지 점검해 제도적 측면뿐 아니라 제도 외적인 측면에서의 규제도 함께 살피고 걷어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공약한 가상자산 정책의 기조에 변화가 없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금융감독원장의 가상자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만으로 윤석열 정부 아래서 게임산업을 비롯한 문화콘텐츠 산업과 메타버스, NFT 등 IT산업의 연계를 통한 디지털자산화 프로젝트가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펴낸 110대 국정과제 중에 'K-컬처의 초격차 산업화(문체부)'에는 K-콘텐츠를 초격차 산업으로 육성해 K-컬처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고 K-콘텐츠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공정하고 탄탄한 미디어 콘텐츠 산업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잡고 있다.
그러나 문체부와 방통위, 과기정통부 간의 협업을 누가 이끌어 낼 것인지 그리고 정책금융지원을 넘어 벤처와 해외투자 유치를 위한 제도개선 등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인 출신을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에 아쉬움이 없지 않다. K-콘텐츠를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부를 창출하기 위한 담대한 비전과 세부 계획, 그것을 지휘할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토니 블레어 못지않은 대대적인 문화산업의 부흥을 즉 '쿨 코리아나(Cool Koreana)'와 '크리에이티브 코리아(Creative Korea)'의 담대한 비전과 슬로건을 내 걸어야 할 때라고 본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1997년 취임 직후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ia:멋진 영국)'와 '크리에이티브 브리튼(Creative Britain:창의적인 영국)'의 비전을 들고 나왔다. 조앤 K 롤링의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는 4억5000만부가 넘게 팔렸고,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도 8편이나 만들어졌다. 이는 바로 '크리에이티브 브리튼'으로 불리는 영국 정부의 문화육성 정책의 결과였다.
블레어 정부는 침체에 빠져 있던 제조업을 대신할 먹거리로 문화산업에 주목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인 크리스 스미스가 쓴 책 '크리에이티브 브리튼'은 상세한 전략을 전달했다. 방송, 광고, 디자인, 공연, 출판 등을 영국 산업의 주력으로 삼겠다는 청사진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정책 방향에 따라 영국 정부는 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를 신설하고, 디지털 콘텐츠 육성 실천계획 등 8개 부문 26개 정책 과제를 시행했다. 2500만파운드(약 432억원)를 투입해 아동, 청소년에게 매주 5시간 이상 연극 관람 등 문화교육을 실시하는 '재능 발견'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방송, 영화 등의 분야에서는 매년 5000명 이상 견습생이 유입되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복권 수익으로 만들어진 국립과학기술예술기금은 매년 300만파운드(약 52억원)를 쏟아부어 창의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창조적 혁신가 성장'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7년 영국의 TV, 라디오 프로그램 수출액은 14억파운드(약 2조4000억원)에 달했다. 런던 웨스트엔드 지역의 뮤지컬도 세계를 제패했다. '캣츠'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 같은 세계 4대 뮤지컬이 모두 이곳에서 생겨났다. 웨스트엔드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연간 15억파운드(약 2조6000억원)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연, 영화 등 다양한 축제를 여는 에든버러는 유럽을 대표하는 축제 도시가 됐다. 문화산업에서만 일자리 40만개가 새로 생겨났다. 일본은 2010년 토니 블레어의 쿨 브리타니아 정책을 표방해 경제산업상 산하에 '쿨재팬실'을 설치한 바 있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은 위험한 나라다'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매력적인 일본' 전략을 실행한 것이다. 이는 정부 관심이 유형자산 중심에서 무형자산과 문화자본 중심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2010년을 전후해 미국과 영국,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의 국가들 GDP에서 무형자산 투자가 유형자산 투자를 앞지르는 경향이 나타났다. 임페리얼칼리지 비즈니스스쿨의 조너선 해스컬(Jonathan Haskel)과 영국 혁신재단 네스타(NESTA)의 스티언 웨스트레이크(Stian Westlake)에 의하면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있어서 무형자산의 비중과 강도는 유형 자산에 비해 한층 더 강화되는 추세다.
급부상하고 있는 NFT 시장만 보더라도 예술, 스포츠, 메타버스, 게임, 유틸리티 등 세분화되고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글로벌 NFT 시장 규모 추이만 보더라도 얼마나 빠른 성장세인지 알 수 있다. 제퍼리 투자은행에 의하면 2022년 350억달러(약 42조원), 2025년에는 800억달러(약 96조원)로 늘어날 전망이다.
불행히 우리나라는 법과 제도는 물론 국내 NFT 시장의 규모나 마켓 플레이스의 숫자 등 NFT 시장에 관한 산업 통계조차 부재한 상태다. 최근 무형자산 담보대출에 초점을 맞춘 금융혁신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16년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사망 후 그가 자신의 향후 저작권 사용료를 담보로 5500만달러 채권을 발행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무형자산의 자금 조달 방식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정부는 무형자산에 대한 융자나 지식재산을 담보 한 은행대출 보증 제도를 마련했다. 디지털 금융과 문화콘텐츠 분야 즉 무형자산에 대한 벤처투자 비중도 늘려야 한다. 하지만 비중을 늘린다 해도 현재의 안정적인 투자 관행을 극복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K-콘텐츠와 IT 그리고 투자의 한 방향으로 정렬을 통해 문화콘텐츠를 가상 자산화 하는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의 담대한 국가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서는 범부처 간 협업이 우선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문체부와 과기정통부, 금감원과 방통위, 중기벤처부의 다각적 협조 위에서 민간 전문가가 주도성을 가질 때 어렵사리 찾아온 글로벌 문화강국의 기회를 성취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김형주 한국NFT콘텐츠협회 이사장 hjkim5558@gmail.com
<필자 소개>
김형주 이사장은 한국외대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7대 국회의원, 서울시 정무부시장를 거쳤다. 현재 디지털혁신연대 수석부회장, 연세대 디지털금융가상자산투자 최고위과정 원장, 부산블록체인규제자유특구 운영위원장, (사)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이사장, 한국NFT콘텐츠협회 이사장 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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