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한반도를 영토로 하고 국민이 주권을 가진 국가다. 대한민국의 목적은 무엇인가. 헌법은 기회균등, 능력발휘를 보장하고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 및 의무를 완수하게 해서 국민의 안전·자유·행복을 확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목적은 정부가 수행해야 할 핵심 과제다. 민간 역량이 낮은 시대에는 정부가 산업진흥, 국민복지 등 모든 사항을 총괄했다. 대통령이 왕처럼 만기친람하면서 독재의 폐해를 낳기도 했다. 민간의 기회균등과 능력발휘는 우리를 선진국 지위로 올려놓았다. 이제 시장에선 정부가 민간을 이길 수 없다. 민간 역량이 높은 시대에는 산업과 시장을 민간에 맡기고 민간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정부가 해야 한다. 민간도 자유와 권리에 따른 책임 및 의무를 돌아보아야 한다. 민간의 다툼이 스스로 해결되지 못하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의견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이 다른 국민에게 피해와 상처를 주지 못하게 막는 것이 정부라고 했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이 정부 수반이 되고 탁월한 인재들이 공무원이 되지만 국민 신뢰는 높지 않다. 부동산, 가계부채, 금융, 원자력, 모빌리티, 데이터 등 국민이 다른 국민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늘고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 정부는 더 많은 행정기관·위원회를 만들고 더 많은 정책을 세우고 세금을 더 거두지만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새로운 정부는 이전 정부와 완전히 다른 정책을 펼치는 일이 반복되고, 같은 정당에서 대통령이 나와도 다를 것은 없다. 정부가 일관된 원칙을 갖지 못했고, 문제의 진짜 원인을 찾는데 시간을 쓰지 못하며, 미봉책으로 일을 그르쳤다. 산업에 관한 아이디어는 시장에서 나온다.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이 먹히지 않는 이유다. 시장원리에 따른다면 클 수 없는 산업이 크고 죽을 산업이 살아 있다. 커야 할 산업이 크지 못하고 살아야 할 산업이 죽고 있다.
디지털플랫폼 정부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상업 플랫폼은 상품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모두 만나는 온라인장터다. 상품정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당근마켓은 중고 물품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을 연결한다. 유튜브는 동영상을 공급하는 사람과 동영상을 소비하는 사람이 만난다. 디지털플랫폼 정부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제공하는 공적 업무를 플랫폼을 통해 제공한다. 모든 오프라인 업무를 디지털플랫폼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적 업무를 위한 디지털플랫폼은 하나여야 한다. A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부처에 접속해야 하고, B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B부처에 접속해선 안 된다. 여러 정부부처에 관련된 복합적인 문제도 A부처, B부처, C부처에 따로 접속해선 안 된다. 하나의 플랫폼에서 일거에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디지털플랫폼 정부의 과제는 혁신 프로젝트, 정부부처 정보공유, 인공지능 기반의 의사결정, 민간활력 지원 생태계 등이다. 디지털플랫폼을 앞세운 것을 제외하곤 지난 정부들의 정책 확장판이다. 정부부처 간 칸막이와 정보 단절, 경쟁에 따른 갈등은 문제를 악화시킨다. 부·처·청의 수만큼 정부가 따로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국민 불신이 없어지지 않는 근본 원인이 여기 있다. 국가가 가진 정보를 클라우드에 모으고 각 정부부처에서 권한에 따라 접속해서 자신의 정책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정부부처가 민간의 일에 간섭하거나 민간과 경쟁해선 안 된다. 여러 부처 소관 업무라 해도 신속하게 하나의 답이 나가야 한다. 인권 사각지대 발견과 복지정책 등 정부가 할 일을 민간에 맡겨서도 안 된다. 국민 간 다툼이 있는 정책 사안을 신속하게 발견하고 중재해야 한다. 협업에 소극적인 정부부처에 페널티를 주어야 한다. 이것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디지털플랫폼 정부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