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지난 100일간 반도체산업 육성 등 기술패권 전쟁에 대한 대응과 디지털플랫폼정부 구축 등을 정보통신기술(ICT)·과학 분야 핵심 과제로 인식하고 전략 마련에 집중했다. 하지만 관련 임무를 수행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하기관 등 인사가 늦춰지고 관련 거버넌스 확립에 시간이 걸리면서 실행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래 핵심 기술과 인프라 확보를 위한 전략 실행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ICT 전담 부처로서 융합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개혁방안을 점검하고 전략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5년간 정책 밑그림은 완비, 실행체계는 문제
과기정통부는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ICT 분야 1호 정책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 성장 지원대책을 통해 향후 5년간 1조200억원을 투입하고 시스템반도체 설계 인력 확보 정책방안을 발표했다. 이어 온라인플랫폼 자율규제 정책과 5세대(5G) 이동통신 중간요금제 등 출시가 이뤄졌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국무회의를 비롯해 국회와 각 정부부처에서 반도체 관련 강연을 하면서 윤석열 정부 반도체 전도사를 자임할 정도였다. 반도체에 대한 밑그림이 제시됐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미중 갈등 등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과기정통부 본연의 임무인 ICT 인프라 진흥과 규제개선, 미디어 등 정책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은는 것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이는 과기정통부와 윤석열 정부가 보완해야할 중요한 과제로 지목된다.
온라인플랫폼 자율규제 협의체를 통해 소통의 틀이 마련됐다. 한국은 온라인플랫폼에 대해 정부가 직접 규제를 가하는 미국과 유럽연합(EU)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한 만큼 성공적인 정책이 가능하도록 업계 의견을 지속 수립하는 것이 과제다.
규제 개혁방안과 관련해서는 종합적인 밑그림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ICT 규제 샌드박스 등 규제완화책을 진화·발전시켜 융합신산업을 보다 활성화할 정책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 통신규제에는 온라인플랫폼 자율규제와 연계해 사회적 역할이 확대된 글로벌콘텐츠 사업자(CP)가 국가 인프라에 기여할 제도방안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지목됐다.
◇디지털플랫폼 정부 등 구체화 필요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플랫폼 정부를 정부·대국민 행정서비스 혁신 핵심방안으로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는 1~2년간 디지털플랫폼정부 기획·도입, 3~4년차에는 구축·발전을 추진한다. 다만 인선이 지연되면서 구체적인 윤곽이 제시되지 않았다.
한국상용소프트웨어협회는 “디지털플랫폼 정부는 디지털 전환과 AI, 빅데이터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잘 활용해 고효율 국정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소프트웨어(SW) 중심 국가 인프라를 구축하는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과업이라고 생각되며 이에 맞춰 단계적 로드맵을 제시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SW·ICT총연합회는 “디지털플랫폼 정부가 명확하게 미션을 줘야 각 부처가 조속하게 움직일 것”이라며 “공공 데이터 전면 개방 등을 제시한 것처럼 디지털플랫폼 정부를 통한 미래 청사진을 그려줄 때”라고 재차 강조했다.
거버넌스 부재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 공약대로 디지털 경제 패권 주도와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거버넌스가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SW 분야 육성은 긴 호흡이 요구되는 만큼 전 주기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보보호 업계는 윤석열 정부의 사이버 보안 정책을 긍정 평가했다. 인재 양성, 한미 공조 강화 등을 주요 정책으로 제시하고 긴축 재정 상황에서도 투자를 강화하는 모습에 높은 점수를 줬다.
정성환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부회장은 “윤 대통령이 정보보호의 날 행사에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참석, 사이버 보안 중요성을 강조하고 업계와 소통했다”며 “정부가 국정 어젠다에 사이버 보안을 포함시키고 산업 경쟁력 강화, 10만 인재 양성 등을 정책화한 것은 성과”라고 평가했다.
◇거버넌스 보완도 핵심과제
과학·사이버 보안 분야에서는 거버넌스 재정비 등을 핵심 과제로 손꼽았다. 이동범 정보보호산업협회 회장은 “정부가 민·관·군 사이버 보안 협력 체계 강화를 위해 사이버안보위원회 설립 계획을 밝혔지만 아직 구체 내용이 드러나지 않았다”며 “사이버안보위 설립을 통해 거버넌스를 정비하고 인증 관련 규제 개선 등에도 속도를 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과기계에서도 아쉬움이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누리호 발사, 다누리 발사 등 중요한 과학기술 이벤트를 성공시켰지만, 정부 초기부터 지적된 과기홀대론은 이어졌다. 연구 현장과 과기계에서는 과기부총리제 부활, 과기 전담 수석비서관 직제 신설 등을 바라는 목소리가 컸는데 실현되지 않았다. 미래를 준비하는 대규모 과기 투자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운 지점으로 지목된다.
과기계에서는 이제부터라도 우선 과기 혁신을 이끌 컨트롤타워를 구축해 체계적인 과기 혁신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향후 국제 정세에 대응, 통 큰 과기 투자도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과기에 발을 안 걸친 부처가 없는 상황으로, 전체를 아우르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정부조직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과기부총리제를 생각할 수 있고, 청와대 내 과기 특보를 조속히 임명해 자문을 구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경우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2800억달러 규모 투자가 골자인 반도체칩과 과학법에 서명을 한 상황으로, 우리 역시 필요한 분야에 큰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고 전했다.
권혜미기자 hyeming@etnews.com,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