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요? 지금 당장 돈 한 푼이라도 버는 게 더 중요하죠. 과연 ESG가 중소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의문입니다.”
지난해 탄소중립 선도기업 발굴차 경북 고령군 주물단지에 있는 한 기업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간담회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현장을 둘러보면서 회사의 지속 성장을 위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도 단계적으로 준비하라는 말을 전하자 대표가 한 답변이다.
방문 이후 ESG 경영에 대한 중소기업 현장의 체감온도는 어떨지 궁금했다. 현장 목소리를 파악하기 위해 필자는 지역별·업종별로 다양한 기업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ESG 준비 수준과 실천에 따른 애로사항을 경청하기로 했다.
올 2월 충남 천안의 디스플레이·반도체 제조업을 시작으로 조선(전남), 섬유·패션(대구), 표면처리(경기), 자동차 부품 제조(경북), 뿌리산업특화단지(충북) 등 전국 각지를 돌며 다양한 산업과 업종에 종사하는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났다.
ESG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기업, ESG를 기회로 신재생 에너지 분야로의 사업 전환을 검토한다는 기업 등 동일 업종에서 기업을 영위하더라도 ESG를 바라보는 시각이 각양각색이었다.
많은 현장을 방문한 결과 '맞춤형 지원정책'과 '유관기관 간 연계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 의견이었다. 이러한 애로를 적극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중소벤처기업 종합 지원기관으로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현재 ESG는 가치를 넘어 규칙으로 자리매김하는 상황이다.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지속 가능한 시대' 구현을 위해 기업의 ESG 실천을 의무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정 규모 이상의 코스피 상장 기업이면 2025년부터 '지속가능 경영보고서' 의무공시를 준비해야 한다.
중소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관련 법률이 하나둘 제정되면서 대기업 중심으로 시작한 ESG가 공급사슬(Supply-Chain)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에까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중진공도 중소기업 ESG 경영 지원을 위해 지난해 경영 안내서를 발간하고 중소기업형 ESG 가이드라인을 소개했다. 올해는 기업 현장의 요구를 반영해 이러닝 콘텐츠 제작,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 ESG 자가진단 등 다양한 시각에서 ESG 지원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또 ESG 실천 기업에 대한 정책자금 융자 규모 확대, 탄소배출 저감설비 지원 등 기업 대표들이 ESG 정책 지원을 체감하도록 'ESG·탄소중립 맞춤형 원스톱 지원 체계'를 신속히 마련했다.
중진공은 중소기업 ESG 지원 방점을 '기관 간 연계 지원'에 두고 'ESG 민관협의회'를 발족했다. 5개 기관으로 시작된 협의회에는 불과 반년 만에 29개 기관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민·관 협업을 바탕으로 시의성 높은 ESG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ESG 지원책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협의회 운영 성과로 지난 4월 국민은행과 손잡고 ESG 실천 우수기업에 전용 대출상품과 우대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부산패션칼라산업협동조합 회원사 대상으로 탄소배출 저감방안 수립 컨설팅을 지원하는 등 ESG와 탄소중립 선도 사례를 적극 발굴해 나가고 있다.
ESG가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6월 ESG 자가진단 참여기업 906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ESG 설문조사에서 ESG 평가 경험 보유기업 가운데 76.7%가 ESG 평가를 통해 거래 조건이 개선되고 거래량이 확대됐다고 응답했다.
물론 응답한 기업 대다수가 ESG 평가 요구에 따른 준비를 선행했기에 나온 결과이지만 생각을 달리해 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실천 의지에 따라 ESG가 어렵고 생소한 기업도 다양한 지원정책을 통해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ESG를 새로운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늘 그랬듯 중진공은 기업 현장 최일선에서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예정이다. 기업과 함께 호흡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ESG와 탄소중립이라는 긴 터널을 안전하게 완주할 그날을 기다린다.
김학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hakdokim@kosmes.or.kr
○ 김학도 이사장은 = 1962년생으로, 청주고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대학원에서 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제31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산업자원부에서 산업, 에너지, 통상, 국제협력, 대변인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행정 전문가다. 산업부에서 통상교섭실장과 에너지자원실장을 역임했고, 2017년에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을 지냈다. 2018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으로 임명돼 중소기업 정책을 총괄했으며, 2020년 5월 중진공 이사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