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는 ‘디자인 주도 도시(Design Driven City)’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헬싱키가 2012년에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된 후 여러 행사를 치르며 도출된 결과물이다. 시 곳곳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요구와 문제를 디자인적 접근방식으로 해결해 더 좋은 도시를 만들어 나간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시는 산업디자인, 디자인경영, 실내디자인 전문가 세 명을 프로젝트 리더로 선발해 학교급식 개선, 노숙자를 위한 주택개발, 건축공사 현장 안전환경 조성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오늘날 디자인의 기능과 역할은 단지 사물의 외형 디자인만 아니라 삶의 방식을 디자인하는 개념으로 넓어졌다. 올해로 설립 10년째를 맞으며 이 분야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기관으로 꼽히는 미국 스탠퍼드대 디자인스쿨에서는 ‘사람의 삶을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하며 학생들에게 분야를 넘나드는 사고와 해결방식을 가르치고 있다. 핀란드 알토대에서는 올해부터 ‘정부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강의를 신설했으며 이 강의로 도출된 아이디어가 실제로 환경부 정책에 반영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선진국의 정부와 시민, 일류 기업은 미래 신사업을 계획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디자인적 사고에 주목하고 있다. 디자인적 사고의 핵심은 디자인으로 어떻게 하면 수요자가 제품과 서비스에 보다 좋은 경험과 가치를 느끼도록 할지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적으로 수요자 시각에서 수요자 개개인의 욕구와 필요를 파악하고 수요자와 소통·공감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최근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기업이 제품디자인 못지않게 ‘사용자경험(UX) 디자인’ 역량을 한층 더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요자 중심의 디자인적 사고는 고객가치 실현이라는 시장개념이 부족한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특히 그 활용방안이 더욱 활발하게 논의되고 진행돼야 한다. 고도로 민주화되고 정보화된 오늘날 사회는 공공정책과 서비스 질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기대가 매우 높다. 수요자의 요구와 필요를 세심하게 배려해 공공정책을 기획하고 설계하지 않는다면 정책의 품질과 만족도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효한 방법론이 바로 공공서비스 디자인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지난해부터 공공서비스 디자인을 주요 과제로 삼고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산업단지 내 관리 부주의로 인한 안전문제, 전통시장 활성화, 노인요양원의 서비스 개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비스디자인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수요자 중심의 현장감 있는 솔루션을 제시한 바 있다.
‘건강검진결과서 리디자인 사업’은 공공서비스 혁신 모델로 주목받았다. 기존의 건강검진결과서는 빽빽한 수치와 생소한 의학용어로 채워져 있어 수검자가 이를 이해하고 활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새롭게 디자인한 검진결과서는 그래프와 픽토그램(그림문자) 등을 활용해 검진결과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했으며, 건강관리 가이드 등을 함께 제공해 건강검진이 의도하는 소기의 정책목적과 만족도를 상당 수준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공공서비스 디자인은 정책 수요자인 국민의 기대와 욕구, 즉 국민의 눈높이에서 문제해결의 출발점을 삼는다. 그 과정에서 국민이 공공서비스의 주인으로서 정책과 서비스의 설계에 참여하는 것은 필수 절차로 여겨진다. 이런 점에서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은 국민 중심의 개방과 공유, 소통과 협력을 중요시하는 ‘정부 3.0’의 핵심가치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디자인은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접목해 다양한 가치를 융합하는 열쇠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공공서비스 영역 전반에 서비스디자인을 적용하기 위한 로드맵을 만들고 있다. 서비스디자인 교육과 세미나 등으로 새로운 디자인 수요인 서비스디자인에 대한 국민인식과 저변도 지속적으로 넓혀 나갈 것이다.
공공서비스디자인 개선을 통해 국민이 공감하고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는 미래형 정책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태용 한국디자인진흥원장 taeyong@kidp.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