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전체회의에서 국가안보국(NSA)의 대량 전화 정보 수집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이는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인 감시 및 정보수집 활동을 폭로하면서 국제적인 파문이 일어난 지 1년 만에 처음 이뤄진 법률 개혁조치다. 그러나 일부 의원과 인권 옹호단체 등은 개혁안 취지가 크게 퇴색했다고 비판했다.
하원은 이 날 수백만 미국인의 통화 정보를 대량으로 모아 장기간 보관해온 NSA의 관행에 종지부를 찍는 것을 골자로 한 ‘미국자유법’을 표결에 부쳐 찬성 303표, 반대 121표 가결 처리했다.
이에 따라 NSA의 정보 수집 권한은 대폭 줄게 됐다. 기존에는 미국인의 통화 정보를 NSA가 임의로 수집할 수 있었지만, 이제 허락을 받은 경우에만 수집할 수 있다. NSA는 의심이 가는 경우 통신사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무차별적인 자료 요청을 차단하기 위해 해외정보감시법원(FISC)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또 감시 프로그램과 관련 정책 변화가 생기면 즉각 의회와 일반에 보고하고 공개하도록 했다.
앞서 NSA는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만들어진 애국법을 근거로 법원이 발부한 영장 없이도 통신사나 인터넷 서비스 제공기업, 은행 등으로부터 이용자 정보제공을 요구하는 등 개인정보를 수집해 왔다. 애국법을 발의했다가 최근 NSA의 과도한 정보수집 행위 비판에 앞장서 온 짐 센슨 브레나 하원의원은 국가 안보와 시민 자유를 모두 보장할 수 있는 타협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NSA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데이터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 무차별적으로 모으는 시대는 이 법과 함께 끝났다”며 “NSA는 여전히 우리를 감시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는 우리도 그들을 감시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이 법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은 성명을 내고 “이번 개혁 법안은 국민에게 NSA 시스템에 대한 더 큰 신뢰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안에 구멍이 많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회가 NSA 활동에 더 엄격한 제한을 가해야 함에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막판에 이를 대폭 희석시켰다는 것이다.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은 “오바마 행정부가 법안을 철저하게 약화시켜 NSA의 대량 정보수집 활동이 여전히 지속할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지적했다.
시민권 옹호 단체와 정보통신 회사들도 최근 이 법안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인 바 있다. 애플,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등이 포함된 정부감시 개혁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고 “개정안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인터넷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무차별적으로 모을 수 있게 하는 허점이 널려 있다”고 비난했다.
법안이 하원을 통과함에 따라 상원 통과만 남게 됐다. 패트릭 레히 상원 법사위원장은 내달께 더 강력한 개혁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