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소프트웨어(SW)산업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세계 100대 SW기업에 단 하나의 이름도 올리지 못했고,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고작 1% 수준이다.
많은 SW 전문가와 정책 입안자가 SW산업 부진의 해결책을 강구했지만 획기적 개선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산업 구조의 문제, 인력 양성 문제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SW에 제값을 매겨주는 것에 대한 인색함’이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SW라는 무형의 존재가 가져다주는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이제 스마트폰 열풍으로 SW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고 있다. SW는 이제 단순히 편리한 도구를 넘어 반드시 존재해야하는 필수 요소로 각인됐다. 이 가치에 적정한 값을 지불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풍토도 조성되고 있다.
이런 시기에 한국SW산업협회가 공표한 2014년 ‘SW 사업대가 산정 가이드’에 개발 SW의 표준 단가를 높이고 상용 SW 유지관리 기준을 신설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가 내세웠던 모토는 ‘공공부문에서부터 SW 제값 주기 실현’이었다. 국내 SW산업 구조 특성상 공공시장은 SW기업의 최대 고객이다. 그간 공공시장에서 SW 적정 대가 산정에 수많은 논의와 정부 정책이 있었다. 그럼에도 실효를 거두었다고 보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값에 대한 실질적 접근이 아닌 대가 산정 방법과 제도적인 접근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이번에 개발 SW의 기능점수 표준 단가가 4년 만에 4.38% 상향된 것은 이런 점에서 고무적이다. SW 개발업무 부가가치가 저평가돼 우수인력이 떠나는 상황을 전환할 기회로 보인다. 상용 SW 유지관리 대가 기준 신설도 반가운 일이다. 별도 기준 없이 8% 수준으로 편성하던 상용 SW 유지관리 예산을 이제는 12%를 기준으로 책정할 수 있는 공식 기준이 생긴 셈이다.
상용 SW는 최초 개발 이후 유지관리로 수익을 창출하는 특성이 있다. 글로벌 SW기업은 모두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급속하게 성장했고 이를 고용과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유지관리 요율 12%는 아직 글로벌 수준에 못 미친다. 하지만 유지관리 대가가 구체적으로 명시되고 관행상 8%대에 머물렀던 요율을 높였다는 것은 상당한 진전이다.
이번 조치가 반가운 또 다른 이유는 정부가 부처 간 상호 협조로 SW산업 발전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간 SW 가격 정책은 국가 예산을 아껴야 한다는 시각과 SW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시각이 뒤섞여 업계가 요구하는 실효적 정책들이 무산되기 일쑤였다. 이번 조치는 SW 주무부처 미래창조과학부의 주도 아래 예산 당국, 발주 당국의 협조를 이끌어 낸 결과물이다. SW가 더 이상 주무부처만의 숙제가 아닌 국가적 과제로 인식됐다는 방증이라 볼 수 있다.
다만 가이드 공표 시기가 다소 늦은 만큼 차기연도 예산에 내용들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공공부문 발주자의 수고가 필요할 것이다.
또 개발 SW 기능점수 표준 단가 상향이 사업 대가 상향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능 점수 규모 산정이 얼마나 적정하게 이뤄질지도 남은 숙제다. 상용 SW도 서비스의 수준과 품질이 높다고 인정되면 정부가 제시한 요율보다 높게 책정하는 관행이 자리 잡아야 한다. 이번 조치들이 내년 예산편성에 실질적으로 반영돼 올해가 SW가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전환점으로 기록되길 기대해 본다.
이상산 한국SW산업협회 사업대가현실화위원장(핸디소프트 대표) slee@handysof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