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애플과 특허전쟁에서 유럽연합(EU) 반독점 조사라는 암초를 만났다. 독일 본안 소송에서 두 차례 패소한 데 이은 매머드급 악재다. EU 반독점 조사는 삼성전자의 통신 특허를 겨냥하고 있다. 반독점 행위가 성립되면 사실상 삼성전자의 특허 무기가 무력화되는 셈이다.
◇삼성이 더 불리한 조사=1일 외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삼성전자와 애플을 상대로 EU 반독점법 위반여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 예비조사에 이은 본격적인 정식 조사다.
EU 집행위원회는 “삼성전자가 필수적인 표준 특허권을 유럽 내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 경쟁을 왜곡하는데 사용하면서 권한을 남용하고 유럽통신표준연구소(ETSI)과 약속한 사항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행위는 “이번 조사 대상에는 애플의 아이패드 신제품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통신 표준특허로, 애플은 디자인 특허로 다른 사업자들의 시장 진입을 제한했는지 따져 보겠다는 것이다. 당장 두 회사를 모두 조사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사실상 삼성전자가 타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EU 조사는 삼성전자의 통신 특허가 프랜드(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조항을 위배했는지 살피는 것이어서 반독점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디자인권에 대한 반독점 행위를 판결한 사례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프랜드는 특허권자라 하더라도 특정 경쟁사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 없고 공정한 업계 경쟁과 시장 발전을 위해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차별 없이 일정 비용을 받고 사용을 허용해야 하는 국제 공정 경쟁조항이다. 애플은 그동안 소송전에서도 프랜드 조항을 내걸어 삼성전자 특허를 무력화하려고 했다.
◇삼성, 표준특허 강조가 `자충수`=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이동통신 표준 및 필수 특허와 관련한 프랜드 규정을 항상 준수해왔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과거에도 램버스와 퀄컴이 비슷한 사례로 EU로부터 반독점 행위를 조사받았지만 모두 성립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하지만 EU의 반독점 조사는 법정 판결과 달리 국가 차원의 판결이어서 다소 주관적이고, 정치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EU가 예비 조사에서 그치지 않고 정식 조사까지 나선 것도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삼성전자가 특허전에서 통신특허를 `표준특허`라고 강조해온 것이 자충수가 되고 있다는 지적했다. 표준특허를 강조하는 전략이 자연스럽게 프랜드 조항 위배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자사 특허를 표준특허라고 강조한 것이 EU의 조사를 불러오는 일종의 실수가 된 것 같다”며 “반독점 조사는 판례가 많아 제법 시스템화된 법원 판결과 달리 정치적 판단 여지가 많아 삼성전자가 이를 적절히 해명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 통신 특허는 프랜드 조항이라는 판단 근거가 명백한 반면에 애플 디자인권은 그렇지 않은 것도 삼성에는 불리한 측면”이라고 덧붙였다.
◇세 번째 본안 소송 `반전 카드`될 듯=삼성전자는 이에 앞서 독일 특허 본안소송에서 두 차례나 통신 특허침해 제소가 기각돼 패소했다. 10만여개에 달하는 통신 특허 가운데 고르고 고른 2개의 특허가 먹히지 않으면서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충격이 적지 않다.
여기에 EU 반독점 판결까지 받게 되면 삼성전자의 패색은 짙어질 수밖에 없다. 10여개 국가에서 진행 중인 소송전이 이들 판결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로서는 3월 2일로 예정된 독일 세 번째 본안 소송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독일 본안 소송은 3건의 특허를 나눠서 판결하는 것인만큼 단 한건만 특허 침해 사실이 입증되면 독일 내 애플 제품 판매가 금지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삼성전자 특허 기각 이유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프랜드 조항에 걸렸거나 애플이 주장한 퀄컴칩(삼성전자와 크로스 라이선스 체결)을 통한 특허 소진론이 받아들여진 결과라면 3차 소송에서도 삼성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프랜드 조항에 걸린다면 판매금지 소송보다 로열티 협상으로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