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부품산업의 발자취(27)

80년대 한국 컨덴서산업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재벌기업들의 컨덴서 부문 투자확대를 들 수 있다.

대기업의컨덴서사업은 중소전문업체들의 영역을 더욱 위축 시키는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소규모 자본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첨단제품에 대한 투자가 단행되는 긍정적인 측면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대우전자부품의탄탈룸 고체전해컨덴서 프로젝트도 긍정적인 측면 에서 거론되는 사업의 하나다.

대우그룹이대한전선의 가전.컴퓨터부문을 인수한것은 83년 1월이었다. 이때부터 대한전선의 인천.구미공장과 종업원 4천여명은 대우전자 소속으로 바뀌었다. 대한 전선이 전자 사업을 포기키로 한 이상 계열부품회사들의 정리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에 따라 오리온 전기.대한콘덴서등 대한전선계열 부품 회사는 주식을 대우가 인수, 대주주가 되었고 이들 회사들은 대우전자계열 부품회사 로 탈바꿈했다.

대한전선컨덴서사업부에서 출발해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군소업체의 하나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던 대한콘덴서는 83년 10월 1일 대우전자 부품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도약의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대우전자부품의초대 사령탑을 맡은 인물은 이충수씨.

삼성반도체. 삼성전자를 거쳐 당시 한국전자의 반도체부문 부사장으로 있던그를 대우가 스카우트해 대한콘덴서에 임명한 것이 83년 9월16일이었다.

이사장과함께 이사급 2명을 합쳐 모두 3명의 인물만이 교체됐을 뿐 나머지조직은 대한 콘덴서의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새로 출범한 대우전자 부품은 그해 12월 동성전자공업을 합병, 자본금 규모를 6배나 늘렸으며 84년부터 재 도약의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대우전자부품을육성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는 컨덴서 전문회사였던 이 회사 의 컨덴서사업에 대해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그러나 80년을 전후한 컨덴서산업의 격변기에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큰 변화 를 겪은 대우전자부품은 투자의 적기를 놓쳐버린 상황에 놓여 있었으며 투자 의 방향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상황인식속에서 출범한 것이 바로 탄탈룸 고체전해컨덴서 프로젝트였다. 탄탈룸 전해컨덴서는 기존의 알루미늄 전해컨덴서에 비해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 장래가 유망한 사업이었으나 제조공법의 까다로움 때문에 당시까지는 국내업체들 중에 손댄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VCR.컴퓨터.통신기기등 전자제품의 필수부품으로 수요 신장이 충분히 예상되고 있었으며 선진국에서는 기술이전을 기피하는 대표적인 품목중의 하나였다. 대우전자부품은 컨덴서사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기존 업체들이 하지 못하고있는 신규품목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탄탈룸 전해컨덴서 국산화 에 뛰어든 것이다.

대우전자부품은처음에 스페인에 탄탈룸컨덴서 공장을 보유하고 있던 톰슨과손잡았다. 톰슨의 반제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조립판매하면서 기술 노하우를 체득해 나갈 계획이었다.

그러나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사업방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곧 깨닫게 됐고 기술도입선을 따로 물색하기 시작했다.

결국일마루콘의 탄탈컨덴서 기술도입에 성공한 것은 대한전선시절부터의 인연도 작용했지만 한국전자 출신인 이사장이 갖고 있던 도시바와의 인연이 큰 힘이 됐다.

탄탈룸컨덴서는 당시 일본의 국책품목으로서 기술도입이 극히 까다로운 품목이었으나 이 사장이 도시바를 통해 마루콘에 협력을 요청함으로써 결실을 맺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노력 끝에 대우전자부품은 85년부터 탄탈룸 고체전해컨덴서의 양산에 성공하게 돼고 이후 지속적인 품질개선을 통해 지금은 국내 탄탈룸 컨덴서시 장에서 점유율 수위를 고수하기에 이르른 것이다.<최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