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사는 지난 30여년간 한국의 전자산업, 그중에서도 가전산업의 대명사로 불려온 기업이다.
따라서지금까지 전자부품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느 기업보다 많은 역할을 맡아 왔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유추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한국의 컨덴서산업사에서 금성사의 이름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삼성전자나 대우전자 등 경쟁사들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특이한 인상을 준다.
삼성전자의경우 전자산업진출당시부터 삼성산요파츠라는 계열부품회사를 설립 컨덴서 생산을 맡게 했었고 대한전선도 가전사업 참여와 동시에 컨덴서 생산을 시작했으며 대우전자도 대한전선을 인수하면서 대한콘덴서를 함께 인수 지금의 대우전자부품이라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삼성전기나 대우전자부품의 경우 컨덴서부문에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 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금성사의 경우는 독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럭키금성그룹도 컨덴서 사업에 항상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 었으며 컨 덴서산업사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MLCC(적층칩세라믹컨덴서)개발이바로 그것이다.
90년대이후 컨덴서분야에서는 가장 "첨단제품"이라는 말을 듣는 MLCC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산된 것은 86년 3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금성 전기에 의해서였다. 금성 전기는 70년에 금성사가 통신기기사업부를 분리해 NEC와의 합작으로 설립한 통신 기기 및 전자부품 생산업체로 91년 6월 금성통신에 합병돼 사라진회사. 금성전기의 MLCC프로젝트가 태동한 것은 8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룹의신규사업을 모색하고 사업타당성을 조사하는 일을 맡은 럭키금성그룹기획조정실이 MLCC를 포함해 세라믹부품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이 82년경 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총괄한 인물은 백광선 본부장(현 금성 일렉트론 상무 ). 이와 비슷한 시기에 금성전기 내에서도 MLCC에 대한 사업욕구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당시 금성전기의 HIC생산과장을 맡고 있던 조영근씨(현 ISHM코리아 기술이사 ,태웅실업 대표)는 전자세라믹분야 기술개발이 시급함을 깨닫고 이를 고위층 에 건의했으며 이것이 그룹 기조실의 계획과 맞아떨어지면서 MLCC프로젝트는 급진전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LG그룹내에 그룹전자재료실무자회의라는 기구가 있었다. 78년에 발족된 이 실무자회의는 각 계열사 개발실무자들의 정기 모임으로 LG그룹 계열 전자부품.재료업체들의 실제적인 고충해결의 장이었다.
82년경이 실무자회의의 위원장을 맡게 된 조영근과장은 그룹기 조실의 지원 에 힘입어 MLCC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말만 들어 보았을 뿐인 MLCC를 국내에서 개발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금성전기는 일본 NEC가 2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NEC 는 MLCC분야에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회사였지만 NEC의 기술을 도입하기는 어려운 처지였다. MLCC는 일본이 기술유출을 극히 꺼리는 품목이었다.
82년조영근과장이 독일에 있던 김호기씨(현 KAIST 전자세라믹 재료개발센터 소장)를 찾아간 것도 이같은 기술도입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당시독일의 모 세라믹컨덴서업체에서 MLCC생산 및 개발부장을 맡고 있던 김 호기박사와 금성전기가 MLCC제조개발에 관한 연구계약을 체결한것이 84년1월 이었다. 금성 전기에 전자세라믹사업부가 발족한 것은 85년 1월이었으며 동사업부가MLCC개발에 착수한 것이 85년 4월, 양산을 개시한 것이 86년 3월이었다. 초기 양산규모는 월3백50만개규모.
이같은과정을 거쳐 의욕적으로 탄생한 것이 국내 최초의 MLCC개발이었다.
그러나금성전기의 MLCC는 전자세라믹사업부 소속의 다른품목들과 함께 세월 이 지나도 별로 진전되지 못했다. 단지 국내업계에서는 처음으로 개발 했다는 발자취만 남겼을 뿐 시장은 후발업체들에게 모두 넘겨주고 말았다.
별다른영향력도 갖지 못한채 세월만 보내던 금성전기 세라믹사업부는 결국 91년 6월 금성통신에 합병되는 운명이 되었으며 지금은 럭키 카본 사업부에 통합된 상태다.
그룹차원에서 출발했던 금성의 MLCC프로젝트는 결국 그룹차원에서 흐지부지 시키고 말았다는 것이 후세의 평가다.<최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