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산업 발자취- 전지 1회.

이 땅에 전지산업이 태동한 것은 해방직후였다.

일제36년의 압제에 신음 하던 우리 민족이 해방의 감격속에 젖어 있던 1946 년 여름.

전라남도광주시 동구 호남동 한 모퉁이에 허름한 가내공장이 하나 세워졌다. 상호는 호남전기공업사.

당시로선세인들의 눈길을 전혀 끌지 못했지만 이 회사의 설립은 이후의 역사를 살펴볼 때 전지산업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이회사의 설립으로 이 땅에 전지 산업의 씨앗이 뿌려졌으며 이 회사를 거쳐간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전지업계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현재 호남동에서 이 공장의 자취를 찾을 수 없고 상호마저 기억 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나 이 회사의 역사는 지금도 그 후신인 국내 최대의건전지 생산업체인 로케트전기를 통해 엄연히 이어지고 있다.

호남전기의설립자는 고 심만택씨.

지금은고인이 된 심씨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해방전 해남군수를 지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전지를 만드는 가내공장 주인으로 변신 하게 됐는가. "일제하에서 군수를 지낸 분이라 해방후에도 일본에 지우들이 상당히 있었던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일본을 자주 오갔고 그런 과정에서 일본인 친구들로부터 전지 제조방법을 익히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호남전기의 초창기 멤버로 일했던K씨의 회고다.

심씨개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의 삶은 해방을 계기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치달은 셈이다.

어쨌든심씨는 공장설립 이듬해인 47년, 가내공장인 호남전기공업사를 주식 회사로 변경하고 사업의욕을 불태웠다. 당시 자본금은 1천만원이었다.

주식회사로탈바꿈한 호남전기는 49년에 들어서면서 건전지 제조의 핵심부품 인 탄소봉 제조설비를 갖춤으로써 본격적으로 사업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호남전기의초창기 멤버들은 이때가 돼서야 비로서 호남전기가 그나마 공장 다운 면모를 갖춘 것으로 회고하고 있다.

"탄소봉제조 설비를 갖추기 전까지는 부품을 조달할 수 없어 미군들이 버린 군용전지를 모아다 탄소봉을 뽑아 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초기 전지산업의 토양이 얼마나 척박했던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탄소봉제조 시설의 확보는 당시의 상황에서 그나마 전지의 안정적인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이에따라체신부. 교통부 등에 관납도 시작됐다. 최초의 관납품은 수동식 전화기용 전지로 크기가 외경 7cm, 높이 18cm의 대형전지였다.

호남전기는관납으로 사업 기반을 순조롭게 닦을 수 있는 기회를 잡는 듯 했다. 그러나 이때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발했다. 6.25전쟁이 터진 것이다.

누구도 전쟁을 피할 수는 없었다. 호남전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생존이 절박한 문제로 대두된 상황에서 기업을 키운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전쟁이 장기전으로 돌입함에 따라 먹고 살기 위해서도 전지 생산을 완전 중단할 수는 없었다.

호남전기는전쟁중이던 52년, 중앙전기시험소의 개정 규격에 합격하는 등 전쟁이후에 대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전쟁이끝났다. 전쟁이 할퀴고 간 폐허의 땅위에 복구의 손길들이 바빠졌다.

호남전기도 힘찬 새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이 중요한 시기에 호남전기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또 한번 주춤거려야 했다.<오세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