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교육(5) 서울 성북구 정릉동 산1번지 K중학교.

북한산이 곧장 보이는 교사 4층 컴퓨터실에는 2학년 남학생 65명이 가득차있다. 교육기자재인 PC가 30대밖에 없어 학생들은 옹기종기 2인1조로 짝지어져 있는 형국이다. 3인1조를 이룬 팀도 있어 교실분위기가 한층 산만한 느낌 이다. 컴퓨터담당 진모교사가 당번학생에 도스 디스킷과 매뉴얼을 2인1조 1세트씩 분배토록 지시하면서 수업이 시작된다.

학생들이도스디스킷을 PC의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FDD)에 삽입하고 본체의 전원을 넣는다.

잠시후모니터화면상단에는"한글도스3.20 Copyri-ght(C) Microsoft Corp.19 88"이라는 호박색문자가 그려지고 바로 밑에 프롬프트 A>가 떠오른다.

PC기종이보조기억장치로서 FDD와 출력장치로서 흑백모니터만 연결된 XT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학생들은진교사의 지시에 의해 A>의 바로 다음 공간에 "basic" 이라고 쳐넣는다. 지금은 한물간 베이식언어를 실행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과정을진행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그러나 재미있어하거나 학구적인 진지함이 전혀 없다. 그 이유에 대해 진교사는 학생들이 "왜 이런 기종을 이제 배우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학생들이 XT를 이미 낡은 "구시대 유물"쯤으로 보고 있다고 전한다. 가정에 있는 PC는 최소한 전원을 넣을 때마다 매번 도스 디스킷을 삽입하지도 않으며 프롬프트도 C>나 D>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프롬프트 C>는 하드디스크가 D>는 거기에 다시 CD롬드라이브까지 장착된 기종을 의미한다. 요즘 추세 대로라면 최소 32비트 386급이상 PC라는 얘기가 된다.

이런상황은 비단 이 학교의 컴퓨터시간에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국내 1만1천여 모든 초중고등학교 컴퓨터실에서 벌어진다. 애초부터 정부가 각급학교에 XT기종을 표준 보급했기 때문이다.

정부의학교 컴퓨터 교육목표가 학생들조차 받아들일수 없는 낡은 기자재 때문에 표류하고 있다는 증거다.

구체적으로학교에 보급된 XT가 왜 낡은지를 알아보자. 우선 정부가 지난 89 년 규정된 학생용컴퓨터의 사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정부규격으로는 최근 그 활용도가 높아지는 PC 통신은 물론 컴퓨터 음악분야 등에 거의 활용될수 없다. 그 기능을 수행하는 SW가 이같은 XT기종 에서는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향후 PC환경의 대세가 될 윈도즈 실행은 애당초 꿈도 꿀수조차 없다. 지난해 하반기만 30만개가 보급된 "한글윈도우3.1"의 경우 디스크만 14장이 되는데다 실행에 필요한 메모리도 최소한 2MB이상은 돼야한다.

보다큰 문제는 FDD이다. 현재 개인사용자가 시중에서 FDD 1대를 구입하려면 4만5천원이면 된다. 이 FDD의 용량은 교육용규격보다 무려 4배나 많은 1.2M B나 되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발표되는 SW패키지의 98%이상은 1.2MB용량을 갖는 양면고밀도(2HD) 디스크에 담겨 공급된다. 따라서 FDD가 3백60KB밖에 안되는 교육용PC로는 이들SW들을 전혀 사용할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운용체계도거론하지 않을수 없다. "한글도스3.20"은 지난 84년 미 마이크로 소프트가 개발한 "MS-DOS 3"을 원본으로 하여 88년 한글화한 것이다. 참고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5월 "한글MS-DOS 6"을 발표했고 현재 판매 되는 국내 PC의 95%이상이 이를 기본탑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글도스3.20"과"한글MS-DOS 6"의 성능차이를 비교할수는 없다. 단순히 프로그램용량만 보더라도 한글도스3.20은 3백60KB용량의 양면(2D) 디스크로 단1장인 반면 "한글MS-DOS 6"은 무려 양면고밀도 디스크로 6장이나 된다. 역시 한글윈도우3.1 처럼 교육용XT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진교사는한마디로 왜 학생들에게 컴퓨터교육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도 이 중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조금은 나은 형편이라고 살짝 귀띔을 해준다. PC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는 이학교 김교장이 빠듯한 학교재정을 쪼개 FDD 30대를 구입해줘 SW를 실행할수 있는 운신의 폭이 조금은 커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