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컴퓨터 업계 동향

다운 사이징(소형분산처리)화 추세가 진전되면서 재부상하고 있는 미국 컴퓨터 산업에서 "차기IBM"의 바통을 이어받을 차세대주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이같은관심속에서 현재 선두주자로 꼽을 수 있는 업체는 미 휴렛팩커드 (HP )사라 할 수 있다.

올1.4분기에 3억9천2백만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지난 93년도에 80억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하면서 적자액 랭킹 1위로 전락한 IBM과는 대조적 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는 HP는 종합매출액을 처음으로 2백억달러대로 올려놓아 디지틀 이퀴프먼트사(DEC)를 제치고 업계 2위자리를 굳혔다. 더욱이 HP는순수한 컴퓨터부문만의 매출액에서도 DEC를 제친것이다.

하이테크산업에서는 하루아침에 주역이 바뀌는 일도 있다. 메인프레임의 IBM이나 미니컴퓨터의 DEC의 조락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HP는 지난 93년의 순이익도 전년도에 비해 2배이상의 신장을 기록했으며 뉴욕시장의 주식값도 IBM의 1.5배로까지 뛰어올랐다.

한국에서는잉크젯프린터로 잘 알려진 HP의 주력사업은 워크스테이션(WS).

원래는전기계측기사업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사업으로서는 계측기나 의료 기기쪽이 유명했다. 그러던 HP가 WS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80년대중반부터. "메인프레임 대체"를 목표로 내걸고 나와 IBM의 호스트를 차례차례 대체해 일약 다운사이징의 총아가 됐다.

최근몇 년사이에 컴퓨터를 둘러싼 환경이 무섭게 변화하고 있다. 전자 산업 시장조사업체인 데이터퀘스트사에 따르면 메인프레임과 미니컴퓨터등 중형컴퓨터 시장이 WS과 PC를 합한 시장에 뒤저진 것은 지난 91년이다. 이후 두 시장의 간격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한편같은 WS 시장에서는 미국의 실리콘그래픽스사(SGI)가 독특한 지위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3차원화상처리 WS분야에서는 감히 SGI를 따라올 업체가 없는 상황이다.

HP와SGI의 공통점은 시장의 급속한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해 특정 분야에 자금과 인력등 경영자원을 집중한 점이다.

HP는일찍부터 요즘 한창 진행되고 있는 다운사이징화를 예측하고 컴퓨터의 심장부인 마이크로 프로세서(MPU)중에서도 고속처리를 실현할 수 있는 RISC( 축소명령어컴퓨팅)칩 개발에 집중투자했다. 그리고 자사의 WS에 RISC칩을 전면채용한 것이 후에 약진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됐다.

SGI도마찬가지다. 지난해 여름 전세계의 영화관을 강타한 "쥬라기공원"에서 보여준 컴퓨터 그래픽기술도 CAD/CAM등의 과학연구분야에서 튼튼히 쌓아온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SGI는 RISC칩의 수요를 예상, 적자를 감수 하면서도 경영부진의 구밉스컴퓨터시스팀을 구제합병하는 결단을 내렸다.

WS의핵심기술인 RISC칩에는 여러개의 아키텍처가 있으나 그것들은 모두 미국에서 개발된 것이다.

이같은현상은 WS에서뿐만이 아니다. PC부문에서도 미국업계의 변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MPU나 OS(운용체계)와 같은 이른바 혁신적인 분야에서는 미국에 양보하고 값싼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생산기술은 일본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 하이테크업계의 통설이었으나 최근의 급속한 엔고에 타격을 받고있는 일본은 생산방법을 전환하기시작했다. 일본시장에서 살아남기위해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미국에서 역으로 자국내 생산을 강화해 부상한 업체가 있다. 바로 미국의 컴팩컴퓨터사이다. 컴팩은 종전의 고급기종노선을 버리고 재빨리 휴스 턴공장의 운영합리화에 착수, 시스팀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킴으로써 단숨에 저가경쟁의 선두주자로 탈바꿈했다. 지난93년도에 컴팩은 매출액부문에서 전년대비 70%의 성장을 기록했으며 순이익 도 전년도의 2배로 올려놓았다.

이러한 컴팩도 한때는 대만업체에 외주를 맡길 계획이었다. 그러나 컴팩의에커드 파이퍼사장은 "생산을 모르고는 경영합리화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 , 외주방안을 일축했다. 외주를 하게되면 위탁업체의 관리도 힘들뿐더러 필요한 물량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데 대한 확신을 가질수 없기때문이다. 또한 타업체에 생산을 맡길 경우 차세대기술로의 발전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도 있다. 지난 80년대후반에는 설계개발은 자사에서 하더라도 생산은 외부에 의존하는 이른바 생산라인이 없는 컴퓨터업체가 미국에서 유행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일본이 대만이나 동남아시아 지역에 생산을 위탁, 종전의 미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별신통한 호재가 없은 일본업체들을 뒤로하고 미국에서는 업계재편의 제1막 이 끝나가고 있다. HP나 컴팩등 "다운사이징의 승자"는 대대적인 승리를 선언했다. 그렇다면 IBM이나 DEC등 "패자"에게는 이제 영원히 만회할 기회가 없는 것인가. 여기에 관해 데이터퀘스트 일본지사의 한 분석가는 "다음에는 자금력이 있는 종합업체가 다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해 관심을 불러 을으키고 있다.

여기서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상대적으로 시장과점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경향은 PC시장에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상위5개사의 합계점유율은 시장이 바닥세를 보였던 92년도에 37.9% 에서 93 년에는 44.1%로 높아졌다. 컴팩이 비약적인 신장을 기록한 것은 사실이지만한걸음 물러서서 지켜보면 IBM등 상위업체 5개사가 모두 전년도 실적을 상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초90년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가격전쟁을 주도한 것은 상위 몇개업체가 아닌 수백개에 달하는 무명업체였다. 그러나 이들 무명업체는 2년이 채 지나지않아 대부분이 치열한 레이스에서 낙오됐다. 주요업체들이 기업재 구축을 통해 저가격기종을 내놓을 수 있는 경쟁력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이같은바람은 공룡기업인 IBM에도 밀려왔다. RISC칩을 비롯해 LCD(액정표시 장치)등 핵심디바이스도 자사내에서 생산해서 조달했다. 92년에는 PC 부문을떼어내 급격한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해나갈 수 있도록 체중을 경량화했다.

수익의중심인 메인프레임의 부진에 그 역할이 가려져있기는 하지만 PC부문 만 한정해서 보면 호전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절정시에는 40만명에 이르던 종업원도 계속된 감원으로 금년말에는 22만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IBM이 본격적으로 다운 사이징에 나선다면 강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핵심 사업인 메인프레임과 미니컴퓨터부문을 떼어낼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같은 주요업체의 재부상을 느꼈는지 업계에서는 중.소규모의 합종 연형이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미 PC분야에서는 중견업체인 AST리서치가 탠디를흡수했다. 워드퍼펙트와 볼랜드를 인수해 SW업계 2위로 뛰어오른 노벨의 레이 눌다회장 은 "이 업계에서도 과점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점에서는 지금은조락한 IBM도 다시한번 주역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미국컴퓨터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대 판도변화는 마이크로소프트(MS) 나 애플 컴퓨터등 많은 벤처업체를 배출한 80년대와는 확실히 성격이 다르다.

앞으로는WS이 저가격화되는 한편 PC가 고성능화돼 양자의 구별이 힘들 어지는 시대가 올 것이고 이 두가지 기종을 수렴한 시장을 제패하는 업체만이 차기 패권을 쥘 수 있는 주인공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