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 란 말은 요즘 사회 각 분야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의 하나이다. 우리 주변에서 통신분야에 적용되는 국제화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개념들은 너무나 총론적이고 피상적인 것들뿐이다.
세계의선진국들은 국제화의 출발점을 훨씬 넘어서서 열심히 뛰고 있는 중인데 우리는 아직도 출발 선상에 서서 국제화의 총론 토론에만 매달리고 있는느낌이다. 이제는 국제화의 각론을 다루어야 할 단계이다.
우리나라통신시장 개방은 1989년부터 논의되어 기기산업 분야는 거의 철저 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개방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쌀시장 개방과 관련하여 개방에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음에도 작 년말부터 온 나라가 떠들석하고 농민. 관련단체.학생, 그리고 정치인들의 반대가 분분하였다. 정부에서도 개방의 불가피성에 대한 대국민설득과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들 이해 당사자들의 자구책 또는 전통적으로 농업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의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상황을 통신부문에 대입하여 보자. 1992년 일반통신장비 개방에 이어 93년부터 통신망장비의 개방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조직적인 반대나 업계의 대책 마련에 대한 논란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왜이럴까. 분명 통신기기 시장개방에 있어 가장 큰 이해 당사자는 정부도, 통신사업자도 아닌 통신기기 제조업체들인데 이들의 반응이 없는 것이다.
요즘초고속 정보 통신망 구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웃 일본에서도 이와 유사한 정보통신 기반구조 구축이라는 목표를 갖고 작년부터 추진중에 있는데 "통신기기공업회" 라는 제조업체 단체에서 이에 대한 대응논리 및 비전 을 제시한 바 있다. 즉, 21세기를 대비한 "광의 나라 실현을 위한 제언" 을 정부에 제안하고 추진방향을 제시하였다.
미국에서도AT&T.HP 등 통신기기 제조업체에서 정보고속도로에 대한 추진방향의 제안과 민간부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어떤가.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에 약 45조원가량의 투자가 소요된다 는데 이 투자액의 행선지는 아마 민간업체일 것이다.
이들은큰 수혜자가 될 수도 있고 이를 놓쳐 외국으로 빼앗긴다면 큰 손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고속 정보 통신망 구축에 관한 제언이나 비전이 업계에서 활발하게 제시되고 있는가.
정부에서는현재 통신사업 구조 조정에 대한 막바지 작업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금번 구조조정의 주요 이슈는 경쟁이며, 이 결과에 따라 통신 사업 의 진로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경쟁의 결과는국제전화 경쟁에서 보아 왔듯이 국내 제조업체에 상당한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국제전화 경쟁의 결과 국내제조업체에게는 이득이었는가. 손해였는가. 분명히 해답은 있을 것이다. 통신기기 업체측면에서 바라본 통신사업 구조조정에 대한 의견도 이해 당사자 차원에서 있어야 할 것이 아닐까.
정보통신산업이21세기초에는 총 GNP의 20%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 은 무엇을 시사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 속에서 정보통신기기 제조 업계는 어떠한 위치를 구축해 나가야 하는가. 우리나라에는 4개의 교환기 제조 업체 가 있고 또 많은 전송장비업체, 단말기업체 등이 난립해 있다.
1987년작성된 EC의 "그린 페이퍼"에 보면 향후 통신기기업체는 세계 시장 의 7%이상을 장악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EC는 통합되어야 한다고 제언을 했다.
우리나라의시장규모는 세계시장의 7%에 훨씬 못미치는 겨우 1%수준이다.
91년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의 통신기기분야 생산규모는 프랑스 통신기기메 이커인 알카텔사 총 매출액의 17% 수준이고, 세계 50대 통신기기 제조 업체 에 한국의 어느 기업도 랭크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상황에서 우리 국내 업체는 여러 회사가 좁은 국내시장을 놓고 치열 한 시장경쟁을 벌이고 있다. 저개발국 진출시에도 서로 화합하기보다는 출혈 경쟁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80년대 폐쇄적인 사회에서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품질이 다소 열악하든, 가격이 비싸든 우리 것이니까 우리가 사서 쓰면 그만인 시대에는 통용이 되었다. 오히려 여러기업이 협동하고 상호 보완하면서 안정된 시장이 있으므로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이제 그러한 폐쇄적 시대는 막을 내리고 WTO(세계무역기구)시대의 개막에 따라 우리의 산업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이를 누군가 바꿔야 하는데정부도 구매자도, 생산자도 나서질 않고 있다.
예를들어 누구는 교환기를 세계적인 전문회사로 육성하고, 누구는 전송장비 를 세계적 수준의 회사로 만드는 전략하에 통신기기 산업계의 재편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마디말과 같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대책들이 바로 총론적 국제화가 아닌 각론적 국제화의 방향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