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대 유통업체 주도권 싸움▼

중소형 가전혼매점들이 결성한 한국가전양판점협회부설 전국가전양판(주) 이 올초에 가전 3사측에게 전속대리점과 마찬가지로 제품을 공급해줄 것을 정식 으로 요청해왔다.

삼성전자와 금성사는 이에 대한 회신을 통해 "기본적으로 어떠한 대상자와도 거래할 수 있다"는 기본입장을 밝히는 대신 전국가전양판(주)에 대한 내역을 충분히 검토해야만 협의가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바꿔말하면 거래당사자가 될 수 있는 전국가전양판(주)에 대한 신용도와 사업계획 등을 확인 분석하지 않고서는 공식적인 거래가 어렵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전양판점 협회측은 이를 제품공급 거부로 판단하고 관련당국에 불공정거래 여부 등에 대한 조사및 조정을 요청, 현재 정부가 개입하는 사건으로까지 확대됐다. 이들 혼매점들이 가전3사에 제품의 직접 공급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가전3사의 시장지배력이 아직까지는 압도적으로 높아 가전3사의 상품을 진열하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영업을 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

또 제품을 직접 공급받지 못하고 대형 전속대리점(일명 정책대리점) 이나 도매 상가에서 구입할 경우 여러가지 브랜드로 전속대리점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혼매점의 특성을 살릴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들 혼매점들은 전국가전양판점(주)을 통한 공동구매로 가격 경쟁력 을 높이고 취급제품에 대한 구색을 갖추겠다는 전략으로 가전3사에 제품공급 을 요청해왔던 것으로 분석된다.

가전3사는 그러나 이들 가전혼매점에게 공식적으로 제품을 공급할 경우 전속 대리점들의 반발은 물론 가전3사에 의해 주도돼온 가전유통시장이 예측 불가 능한 미궁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일례는 그동안 가전3사가 주도해온 가전유통시장에서 메어커와 유통 업체간 주도권 싸움이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한국가전양판점 협회 김재홍회장은 "가전3사가 한국가전양판(주)측에 제품을 공급하려 들지 않는 것은 가전유통시장에서의 배타적 지위를 견지해 나가 겠다는 의도"라고 전제하고 "유통시장개방에 따라 선진외국의 대형 양판점들이속속 국내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전3사가 전속대리점 체제에만 매달리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유통산업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 고지적했다. 즉 외국 유통 업체들과 경쟁할 만한 힘을 키워야하는데 가전대기업들이 이를가로막고 있다는 얘기다.

금성사 유통기획실 최상규 부장은 이에 대해 "혼매점이 확산될수록 외산가전 제품의 국내시장 공략이 그만큼 쉬워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못박고 "그렇지 않아도 수입선 다변화 품목 해제와 함께 일본 가전제품을 비롯한 외산가전제품의 국내유입이 불가피한데 판매장소까지 넓혀준다면 국산가전제품의 입지는 급속도로 약화돼 대만과 같은 가전산업의 붕괴를 자초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같은 명분 외에도 가전3사와 유통업체들 간에는 시장가격 결정 등 가전 유통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서로 잡겠다는 속셈이 깔려있다.

전속대리점 체제를 유지해오면서 유통시장에서 그동안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 해온 가전3사로선 유통업체들에게 바통을 넘겨줄 경우 내수판매를 통한 경영 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가전유통 업체들은 그러나 가전3사의 일방적인 가격결정 등 유통시장 장악으로 가전유통 산업의 기반약화를 초래할 뿐 아니라 소비자들도 비싼 가격으로 제품을 구입하게 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뉴코아백화점에서 법인분리한 (주)전자월드가 가전3사로부터 제품을 직접 공급받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저가판매를 단행하고 있는 것도가전3사 등이 쥐고 있는 유통시장에서의 주도권을 빼앗아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럭키금성경제연구소 유을섭 책임연구원은 이같은 기류에 대해 "가전3사의 대리점 체제 고수는 유통시장개방에 따른 외국유통업체들의 국내진입과 혼매점 의 급부상을 저지하는 연장효과를 거둘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인 처방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