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모임이 참 많다는 느낌이다. 학회도 그 중 하나이다.
최근에도부쩍 학회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주위에서 일어나 는 사례를 보면 종래의 학회와는 다소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지금 까지의학회는 방법론보다는 응용분야 중심이었다. 따라서 회원 대부분이 대학의 같은 혹은 유사학과 출신들이어서 끈끈한 이해관계로 묶여 위계질서가 자연스럽게 잡히었다. 그러나 최근의 학회들, 예를 들어 한글정보학회, GIS학회,컴 퓨터그래픽스학회, 프로젝트관리학회 등을 보면 기술.방법론 중심이어서 소속회원들의 출신학과나 직장이 퍽 다양하다. 컴퓨터그래픽스학회의 경우 전산학.건축학.기계학.의학.방송.산업디자인 등 다양한 전공의 교수, 기술자들 로 구성된 모임이다. 이른바 문과.이과, 그리고 예능이라고 우리사회가 억지 로 구분한 담이 없어진 것이다. 한글정보학회에는 언어학.심리학.전산학. 철학전공 학자들이 같이 참여하고 있다.
사회가 소프트 중심으로 이전되어 가면서 종래 우리가 산업사회에서 편의상 구분했던 고정관념들이 점차 맞지 않게 되고 있다. 아직도 대학 입시에서는 문과.이과로 구별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우리 청소년들을 이 고정관념의 틀에 집어넣어 그들의 다양한 창의역을 말살시킬 것인가? 학교 뿐만이 아니라산업에서도 일차산업, 제조업, 서비스산업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 전분야가 정보화 되어가면서 점차 산업간의 경계도 뚜렷한 구획이 없어지고 있다. 수만 마리의 닭을 컴퓨터로 사료를 제어, 관리하는 닭공장은 축산 업인지? 제조업인지? 컴퓨터 하드웨어 생산이 제조업이어서 혜택을 받는다면, 같은 소프트 웨어를ROM화하면 제조업이고 디스켓에 수록해 판매하면 서비스산업인가? 꼭 구분이 필요하다면 앞의 닭의 경우 1.4차 산업, 다음 소프트 웨어의 경우는 3.7차 산업은 어떨는지? 우리사회는 다양한 사회이므로 정수로 구분짓기에는 이미 부족한 소수점 사회인 것이다. 사회가 소프트화되어 감에 따라 노동인구도 근육노동자보다 두뇌노동자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제조 업체도 생산라인보다 설계.연구실의 인력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모전자회사의경우 전체사원 4만명 중 20%인 8천명이 연구직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 노조의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 곧 뇌동자란 조어가 더 적합할 시대가 올는지도 모른다.
최근에는멀티미디어 시대를 맞이해 영화를 비롯한 영상산업 진흥을 위해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위한 하드웨어의 개발.정비와 그래픽스 등 소프트웨어의 개발 및 활용을 위한 전문인력의 양성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도 가능하다. 그러나 영상산업은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소프트웨어산업은 공장도 , 장치설비도, 재료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사람"이 전부인 것이다. 사람의 육성은 좁게는 "교육"이, 넓게는 그 시대 그 나라의 "문화"가 좌우한다.
이조오백년, 일정시대, 그리고 지난 50년의 흑백논리적, 이분법적인 사고체계하에서는 "사람"의 생각이 창의적이기 어려웠다. 새 정부하에서도 각종 제도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려운 것이다. 특히 교육분야는 가치관의 다양화가 시급하나 아직도 여전히 "남들과 좀 다르면 먼저 자신이 불안해지고 실제로 나중에 손해를 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가감승제이외는 수학을 전혀못해도 한 분야에서 특출하면 가고 싶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도 전인교육을 전과목교육으로 착각, 혹은 악용하는 교육자는 없는지? 정부는 세계적인 기술흐름에 발맞추어서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사업을 펼치고 있다. 원격교육시스템은 이 사업의 시범사업으로 조기 착수될 예정이다.
그러나기본적으로 "일등하는 학생이 서울법대나 공대에 안가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 한 이러한 시스템도 앞으로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창의력있는 인재양성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대중음악을교육하는 대학이 없어서 대학입시를 포기했다는 서태지 같은 용기있는 젊은이들의 출현을 계속 기대만 하고 있을 것인가? 산업사회와는 달리 우리사회도 점차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발달로 개인의 다양한 가치관을 수용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고 있으므로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뜨려야 한다.
.정보사회는 소프트사회이며, 소프트사회에서는 사람이 유일한 자원이다.
그리고그 사람도 30대 이상이면 이미 늦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교육은 국.영.수 중심으로 문과. 이과로 나누는 반세기 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우리의 소중한 젊은 소프트 자원을 계속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의 틀에 묶어두고만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