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업계의 거목 곽태석씨가 국내 부품산업의 기반을 마련하던 80년대초에는 컬러 방송이 시작돼 TV가 흑백에서 완전 컬러로 전환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튜너도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소위 경박단소화의 붐이 일어났다.
금성알프스는81년에 프린트 코일을 이용한 컬러TV용 튜너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데 이어 84년들어서는 일본 알프스의 기술 지원을 받아 우리 기술진이 설계한 칩부품을 이용한 전자동조 튜너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칩 부품의 전자동조 튜너는 소형으로 구성됐을 뿐 아니라 자동 실장 기술 을 국내 처음으로 접목시켰다는데 의미가 있으며 금성은 선두 주자답게 국내 최초 VCR용 튜너인 RF 모듈레이터를 개발, 85년 11월까지 생산한다.
이에뒤질세라 후발업체인 삼성전기는 79년 전자식 튜너를 개발, 생산에 나선 이후 80년 7월 국내 컬러방송에 대비해 컬러 기구식 메카튜너를 개발, 양산하고 82년 3월에는 독자기술로 1백?급 대형 컬러튜너 개발에 성공한다.
이어삼성전기는 같은해 3월 NTSC타입의 1백80?급 CATV(종합유선방송) 튜너 를 본격 개발하여 미국 GI(제너럴 인스트루먼트)사, 마그너복스사 등에 샘플 을 공급하고 8월에는 TV수요 급증으로 메카 튜너의 생산능력을 월 80만대로 늘렸다. 삼성전기도 제품및 부품의 경박단소화에 부응하기 위해 1백?급 전자 튜너의 칩화를 추구하고 NTSC 타입의 CATV용 튜너를 국내 처음 개발해 월 3천개씩 생산, 공급하기에 이른다.
삼성은또 세계 최대 튜너업체인 미국 제니스사에 VHF UHF메카 튜너를 조립 , 월 2만대씩 직수출하기 시작하고 미국 RCA사에 메카 튜너를 월간 5만대씩 공급키로 승인을 받는등 대미수출을 계기로 신제품 개발과 생산 기술이 크게향상됐다고 이 회사의 튜너 총괄책임자 문봉모이사는 회고한다.
금성알프스와삼성전기가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 생산과 신제품 설계 기술을 갖추기 시작할 당시 한국테레비(한국전자)는 일본 도시바의 첨단기술을 바탕으로한 TV용 전자식 튜너의 최신 생산시설과 기술진을 확보, 선두 대기 업 양사보다 앞선 제품을 생산한다.
이에따라 금성알프스와 삼성전기 양사는 한국전자의 전문 기술진을 확보하기 위한 스카우트전을 치열하게 벌였다고 현 한국전자 관계자들은 전한다.
삼성전기는85년엔 당시 튜너부문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던 미국 제니스사 소속의 문태형씨(현 에이텍산업전무)를 전격 스카우트하게 된다.
세계적인튜너 전문가인 문태형씨는 50년대말부터 미국 제니스사등에서 세계 최초의 튜너를 개발, 생산하는데 참여하고 개발 책임자로 주가를 높이고 있을 때 삼성이 손을 뻗쳤다.
재미교포인 문씨는 6.25동란이후 군에서 쌓은 뛰어난 영어실력을 인정 받아일찍이 미국 유학길에 생존을 위해 산업전선에 나선 것이 튜너개발업체 였다고 한다.
50~60년대개발에 몰두, 수십가지의 특허 제품을 개발한 공헌도 있지만 틈틈이 독자 개발한 자신만의 특허 작품도 다수 있을 정도로 많은 발명을 한 문 씨는 이후 70년대들어 기술이 일본으로 이전되면서 미국업체들이 한국을 포함한 동남아지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할 때 한국으로 나온다.
미국생활에 젖어있던 문씨는 고향이 그립기도 하고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의 제의도 있고 해서 계약을 맺고 국내로 들어와 그동안 닦아온 실력을 모국에 서 펼칠 계획이었으나 여러가지 요인으로 고전하게 된다.
문씨는대부분의 교포들이 그랬듯이 출세지상주의에 빠져있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로 인해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삼성과의 계약기간 만료 이후에는 여기저기 전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