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피"(감독 레오 카락스, 주연 줄리에트 비노쉬, 데니 라방)는 영화평론 가들이 뽑은 명화 1백선, 혹은 영화교과서에 실리는 꼭 감상해야 할 영화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작품이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기존 영화문법의 틀을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시도한 실험적인 영상과 강력한 이미지의 대비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한 회색빛 절망 등을 들어 감독의 천재성이 반짝이는 명화라고 극찬한다.
그러나 난해한 전개와 상징적 언어들로 가득찬 화면구성 등은 관객들에게 쉽게 공감의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난점이 있다.
영화는 알렉스(데니 라방), 안나(줄리에트 비노쉬), 마크 간의 부조리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좌절에서 시작돼 죽음이 상징하는 절망으로 끝난다.
알렉스는 안나를 구원의 여인으로 생각하고 사랑을 갈구하지만 안나는 그의 아버지 친구인 마크를 죽도록 사랑한다. 알렉스에게는 리즈라는 여인이 접근 하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마크는 알렉스의 아버지가 지하철에 치어 숨지자 이 사고가 미국 갱단의 보복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알렉스를 고용, 애정없는 성관계에서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불치병 STBO 왁친을 빼내기로 모의한다.
정상궤도를 벗어난 알렉스와 안나 그리고 마크의 사랑은 숙명적으로 고통과 절망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알렉스 일당이 왁친을 빼내는 순간 미국갱단이 그들을 추격하고, 총상을 입은 알렉스는 죽기 직전 구원의 여인상이 안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출구가 없는 터널처럼 이 영화는 인간이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과 좌절을 새로운 아미지의 화면으로 그려 나간다. 서로 맞지 않고 어긋나는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보여지듯이 현대인의 상호단절과 사랑이라는 관념이 지닌 부조리도 상징적으로 묘사된다.
레오 카락스의 영화는 그의 명성과는 달리 흥행에선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세번째 작품 "퐁네프의 연인들"의 경우 본국 프랑스에서는 물론 세계 전역에 서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지만 한국에선 개봉관 관객이 20만이 넘는 이변을 보였다. "나쁜 피"가 한국에서 또 다시 이변을 나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