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부품산업의 발자취(151)

금성사가 균미공장에서 AC소형모터의 국산화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던60 년대말 서울 성수동 한 귀퉁이에서는 DC모터를 만들어 보겠다는 열기가 가득했다. 다혈질의 적극적인 성격으로 소문난 풍성전기 황규삼씨(74세, 현 풍성전기회장 는 자동차용 DC모터 개발을 위해 연일 기계와 씨름하고 있었다.

황회장이 모터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자동차로 유명한 일도요타 사와 우연히 손을 잡으면서부터다.

남대문시장에서 고물상으로 돈을 벌어 60년대 중반 전화기와 자석식 교환기 등의 통신분야에 손을 댔다가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을때 국내시장에 코로나자동차를 상륙시킨 도요타로부터 자동차 히터용 모터생산을 제의받은 것이다. 이때 탄생한 모터가 바로 국내 DC모터의 효시가 되는 이른바 계자코일모터다.지금에 와서 보면 당시 제품은 모터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조악했다.자 동차에 채용되는 전장용 정밀모터가 주먹만한 크기에 자석없이 그저 코일을 감아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그것도 상당한 기술에 속했다고 동사 김종원 전무(당시 설계과장)는 말했다.

그는 또 "지금과 같은 페라이트 자석이 없었던 당시에는 단순히 코일만 감아 만든 모터도 유용하던 시절이었다"며 "하우징도 화학수지가 아닌 철판을 잘라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성능은 괜찮았던지 품질검사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도요타사가이 들 제품가운데 일부를 채용하고 나섰다.

그때부터 풍성전기는 자동차 전장용모터 전문업체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특히 (일본전장)과 기술제휴를 맺고 시작한 스타터, 와이퍼 모터 생산은 풍성전기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72년에 접어들면서 예기치 못한 외교적 사건으로 "잘 나가던" 풍성전기는 큰 위기를 맞는다.

당시 중국의 총리인 주은래가 비공산권국가에서 생산되는 물품의 중국반입을 금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자 중국시장개척에 주력해왔던 도요타가 풍성전기 와의 관계를 끊어버린 것이다.

도요타의 코로나에 대한 공급물량을 믿고 각종 설비등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 했던 풍성전기는 결국 부도를 내고 만다.

이때 풍성의 회생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기아그룹의 창업자인김 철호 회장이다.김회장은 한 때 남대문시장에서 자전거포를 경영해 근처에서고물상을 했던 황회장과는 막역한 사이였다.

당시 기아는 삼륜차 생산을 시작할 무렵으로 관련모터는 만도기계의 전신인 현대양행으로부터 공급받고 있었다. 기아의 김회장은 경쟁사라 할수 있는 현대자동차의 계열사로부터 핵심부품을 공급받고 있다는 사실을 달갑지 않게생각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황회장의 어려운 처지를 알자 자사소요 물량의 일부를 풍성으로 돌려준 것이다.

현대양행은 그 당시 일미쓰비시 기술을 채택한 모터를 생산해와 도요타 기술 을 채용한 풍성의 설비로 규격을 맞추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산위기에 처한 풍성으로서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며칠 밤을 새워 미쓰비시 규격으로 스타터, 히터, 레귤레이터용 모터등을 생산하는데 성공했고 이들 제품은 생산하기 무섭게 기아의 소하리공장으로 들어갔다. 경인고속도로에 이어 경부고속도로가 등장하면서 고속주행시 안전성에 문제 가 많은 삼륜차는 곧 사라지게 된다.삼륜차를 기반으로 재기에 성공한 풍성 전기는 이후에도 타이탄,브리사,복사트럭등 국내 자동차의 원조격인 초기 모델에 모터를 공급하면서 제 2의 도약기를 맞는다.

이에 힘입어 그동안 서울 화양리 등지를 전전하던 풍성은 셋방살이 공장시대 를 마감,80년 창원공단에 전용공장을 마련하면서 자동차용 DC모터산업을 주도하는 명실상부한 전문업체로 우뚝 올라서게 된다.

풍성전기와 함께 국내 자동차용 DC모터산업 기반마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업체로 앞서 언급된 현대양행을 빼놓을 수 없다.

62년 안양공장에서 양식기 제조업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70년초 자동차용 모터생산에 나서면서 성장을 거듭,지금의 만도기계의 기틀을 다졌다.

또 피아트자동차에 와이퍼모터를 공급한 동양전기도 70년대에 나타난 자동차 용 모터전문업체다.동양전기는 얼마후 제품불량 문제등의 이유로 소리없이사라졌지만 와이퍼용 모터산업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는게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얘기다.

일본 업체들의 저가공세로 오디오,완구용등의 국내 DC 정밀모터 시장이 거의 초토화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국내시장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자동차용 DC모 터의 저력은 풍성을 비롯한 선발업체들의 이같은 노력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김경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