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표준화기구(ISO)와 마이크로소프트, IBM, 애플등 유니코드컨소시엄이 추진하는 차세대 국제문자처리용 유니코드에 대한 국내 입장은 대체로 2가지로 볼수 있다.
하나는 "다국적 기업들의 강자논리로 짜여진 유니코드를 우리가 왜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수용여부에 대한 것과 또 하나는 유니코드는 대세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 하에 "어떤 한글코드를 받아들이느냐"하는 방법론에 대한 것이다.
전자에 대한 논리는 현재 한글관련 소프트웨어회사들 사이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어 시선을 끌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호응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유니코드는응용프로그램에서 보다는 운용체계(OS) 레벨에서 해결돼야 하는것이 수순이라는 차원이다. 즉 OS는 마이크로소프트등 극소수의 외국기업들 만 공급하고 있어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로 논란을 벌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세는 유니코드를 받아들이되 한글처리와 관련해 어떤 코드방식을 채택하느냐가 최대 관건이 되고 있다.
유니코드에 어떤 방식의 한글코드를 채택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유니코드가 사상최초로 국제표준, 즉 세계 각국이 공용으로 사용하게 될 단일코드가 된다는 점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각국이 미국의 국가표준문자세트(ASCⅡ)를 40년 가까이 원용하거나 변형하여 공용코드 처럼 사용해왔다.
따라서 새로 제정되는 유니코드는 적어도 40~50년은 쓸수 있게끔 앞을 내다보고 설계돼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 때문에 유니코드에 채택될 한글처리 코드에 대해 정부(공업진흥청)는 신중할수 밖에 없었다.
현재 한글이 표현할수 있는 현대어는 모두 1만1천1백72자에 이른다. 그러나 기존 정부표준인 KSC 5601/1987(완성형)의 2천3백50자와 KSC 5657(완성형확 장)의 1천9백30자로는 4천2백80자만 표현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유니코드에는 1만1천1백72자를 표현할수 있는 KSC5601/1992(2바이트 조합형)코드를 수용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현대어 1만1천1백72자와 고어 1천6백73자, 그리고 문화발전에 따라 새로 생성할 가능성이 있는 문자를 원천적으로 표기할수 있는 새로운 한글코드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따라 자소조합형이라는 새로운 코드를 제정하고 이를 92년 서울에서 개최된 IS0회의에 제출, 국제표준으로 채택하게 된 것이다.
이때 정부는 자소조합형과 기존 코드와의 호환성을 위해 KSC 5601/1987의 2천3백50자와 KSC5657의 1천9백30자, 그외의 가나다순 2천3백70자, 연변조선 족이 요청한 6자등 모두 6천6백56자의 완성형 한글을 추가로 요청, 채택됐다. 자소조합형은 한글의 초성.중성.종성 모두에 2바이트의 부호값을 주는 방식 이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소리마디 마다 2바이트의 값을 가졌던 기존 완성형 과 2바이트조합형과 달리 자소조합형은 한소리 마디에 적게는 4바이트(종성 이 없는글자), 많게는 6바이트(종성이 있는 글자)의 부호값을 갖게된다.
이는 유니코드에 채택되는 모든 부호에 2바이트 부호값이 주어진다는 원칙에 따르면서 모든 한글을 원칙적으로 표현할수 있다는 장점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자소조합형은 기존에 한소리마디 값이 2바이트이던 것이 6바이트로 까지 증가하기 때문에 컴퓨터의 메모리소비가 높다는 지적이 있다. 또 이같은 코드가 처음 제정됐기 때문에 소프트웨어구현, 특히 font(서체)구현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주)마이크로소프트(MS)가 반발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MS는 현재 완벽 한 유니코드가 채택될 "카이로"운용체계(96년 발표예정)에 앞서 기존 프로그램간 브리지역할을 담당해야할 "윈도즈NT3.5"의 한글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MS는유니코드에서 현대어 1만1천1백72자만 사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유니코드에 채택된 정부안 가운데 완성형으로 포함된 6천6백52자에 4천1 백56자를 추가하자는 것이다. 물론 자소조합형은 사용하지 말며 고어나 새로 생성가능한 문자표현도 생각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지난 5일 빌 게이츠회장 방한에 맞춰 발표할 예정이던 한글판 "윈도즈NT3.5" 가 이 때문에 늦어졌으며 공개된 시험판 역시 KSC 5601/1987의 2천3백50자 로만 한글을 구현하고 있는 상태다.
MS는 현재 미본사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유니코드컨소시엄과 ISO에 자사안의 수용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적 특수성 보다는 자사의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MS의 요구가 받아들여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서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