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저항기산업의 역사는 라디오 산업의 급속한 성장과 맥을 같이 한다.
국내전자산업의 서막을 연 진공관형、 트랜지스터형 라디오의 국내생산을 위해서는 전자부품의 국산화가 필요했다. 라디오 생산의 필요에 의해 전자부품 산업、그중에서도 저항기의 역사가 시작됐다는게 초창기 국내전자산업을 일군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국내 저항기산업의 싹을 틔운 주역은 초창기 국내 전자 산업을 일군 금성사(현 LG전자)라 할 수 있다.
지난 63년11월 부산 연지동에서 온천 2동으로 공장 및 본사를 옮긴 금성사 65년 시절이 국내 저항기산업의 시작이다. 금성사 내에서도 30평 남짓한 중앙 연구실(중앙연구소의 전신)은 그 첫장이다.
국내 최초의 저항기 생산업체인 성요사에 초창기 근무했던 이들은 "국내 최초의 저항기는 지금은 고인이 된 서울대 전기과 출신의 엄기춘 중앙연구실 실장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엄실장은 후에 금성사 음향기기 공장장과 성요사 사장을 거친후 개인사업을 한다. 63년11월 엄기준씨와 함께 금성사에 대졸사원으로 공채됐던 오금석(현 성동 전자 사장)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내최초의 저항기개발은 당시 금성사 생산 2부장을 맡았던 이희종씨(현LG 산전사장)、 중앙연구실 실장을 맡았던 엄기춘씨、 그리고 생산 2부에 속했던 전자과 제2부품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금성사 생산 2부는 라디오를 중심으로한 전기분야(지금의 전자)를 총괄했었고 이 생산 2부내 전자 과 제 2부품실은 라디오에서 필요로 하는 바리콘、 컨덴서、 스피커、 볼륨 등 각종 전자부품류의 국산화 개발 및 생산을 담당했었지요."오금석씨의 30 년전 기억을 계속 더듬었다.
"당시 생산 2부내 전자과 제2부품실 주임으로 근무하면서 바리콘、 스피커、 볼륨 등의 국산화를 추진、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하루는 엄실장이찾아왔죠. 카본필름 저항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끝에 삼성요업이 공급한 자기관에다 카본을 증착시키는데 까지는 성공했으니 제 2부품실에서 그이후의 공정은 함께 해달라는 부탁이었지요. 당시는 대졸사원이 몇명 안돼 엄실 장이나 저나 어느정도 힘이 있었고 당시 입사동기는 의형제나 마찬가지였기때문에 다른 일은 제쳐두고 저항기 개발에 매진했습니다."엄실장과 오주임이 시도했던 저항기는 지금 같은 세라믹 로드형이 아닌 자기관식 카본증착 저항 기로 이는 자기관에다 카본을 증착시키고 이의 단자부분에 리드와이어를 감아 납땜(캡을 씌운것과 동일한 기능)을 한후 다시 커팅기술로 저항값을 입혔는데 단자 끝의 리드와이어를 구부렸다해서 L타입이라고도 칭한다.
카본증착이 이뤄졌다해서 쉽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말이 국산화 지 가진 기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맨먼저 부닥친게 일본어 실력의 부족이었다. 요즘은 국제화 시대이다 보니 외국 기술서적 구하기도 쉽고 외국어 하나 둘 정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때는 안그랬죠. 엄실장이나 저나 일본에서 출판된 "저항기"、 "RCL"이란 책에 의존했는데 우리가 다니던 대학시절엔 이승 만대통령이 일본어책 판매에 대해 엄격했고 그러다 보니 어렵게 구입한 그책 을 읽고 풀이하는 데도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습니다."책번역은 물어 물어 한다 해도 세부기술의 접목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단자부분에 리드와이어를 감는데 까지는 그럭저럭 해나갔으나 저항값을 입히는 커팅기술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습니다. 우연히도 금성사에 있다 자리를 옮긴 라정환씨(전 아남정밀 사장)가 커팅기를 만들다 중단한게 있었습니다. 제2부품실 주임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의 완제품을 만들었는데 재봉틀 모터에 벨트를 감고 끝을 뾰족하게 연마한 커터를 단 조잡한 기계지만 이를통해 커팅기술을 간신히 소화했습니다." 이 커팅기는 2년후 이화다이아몬드가 썩좋은 커팅기를 만들때까지 계속 사용되어 초기 국내저항기 산업에 적지않은 도움이 됐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품의 저항값이 얼마나 되는가를 측정하는 것도 대단 한 문제였다.
"저항값 측정을 위한 테스터가 필요했으나 당시는 구하기가 대단히 어려웠고그래서 생각한 것이 군용으로 사용되는 비슷한 계기판을 뜯어다 페스톤 브리 지형 계측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가물가물하지만 엄실장이 일본책을 보고 카본증착을 입힌후 테스터를 조립해 국내 최초의 카본증착 저항기를 생산 하기 까지 1년여가 소요됐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저항기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웃겠지만 기본 기술이라고 아무것도 없었던 당시 1년만에 상용 화 개발완료란 칭찬을 받을만했습니다." 1백옴W용으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L타입 자기관식 카본증착 저항기、 이를처음으로 사용한 제품은 라디오가 아닌 전화기였다. 이같은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없다. <조시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