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새로운 문물이 도입되면 제일 먼저 용어 사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면 "데이터베이스"나 "X세대"라는 말처럼 번역없이 원어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커스토머(Customer)"를 "손님"이라는 좋은 우리말로 번역 해서 쓰기도 한다. 외래어를 번역하다 보면 문화의 차이때문에, 혹은 용어에 대한 이해 부족때문에 희한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여기서 모든 외국어 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쓰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별로 없고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그러나 우리말 용어를 적극적으로 개발해내고 많은 사람이 의지를 갖고사용해 준다면 우리 고유의 기술 발전과 문화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생각한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용어 문제는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컴퓨터가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30년이 넘었지만 국가 차원에서 정보통신 관련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은 등한시해 왔던 것 같다. 다행히 지난해 문화체육부 주관 으로 컴퓨터 관련 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이 모여 여러 차례 회의를 가듭한 끝에 1천6백개 단어를 선정하여 이를 번역하고, 이들을 첫째 순화한 용어(우리 말로 번역된 한글 용어를 의미함)만 쓸 것, 둘째 될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를 쓸 것, 셋째 외래어와 순화한 용어를 혼용하여 쓸 것, 그리고 외래어를 그대로 쓸 것등 4종류로 구분하여 발표하였다. 이 용어들은 어느 뜻있는 출판사 에 의해 "우리말 컴퓨터 용어"라는 제목의 소책자로 만들어져 전국 서점에서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
이 용어집을 보면 용어 번역 작업에 참여했던 분들의 노고가 대단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작업이 남아 있구나 생각되기도 한다. 정보통신 관련 핵심용어의 하나인 "컴퓨터"는 그동안 "전자계산기"혹 은 "슬기틀"로 번역되기도 했으나 "전산기, 셈틀"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리 널리 사용되는 것 같지 않다. 또한 "bit"나 "Byte"는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를 "자료 기지"로," CPU"를 "중앙처리장치"로, "입출력 포트"를 "나들목"으로 번역한 것은 뜻도알맞고 사용하기에도 어색하지 않아 좋다.
여하튼 좋은 우리말로 번역된 경우는 원래 우리말에 그 외래어에 알맞는 개념의 말이 존재하는 경우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우리말에 그 외래어에 해당하는 개념이 없거나 희박한 경우로 볼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예를 들어 Customer 를 "손님"이라는 좋은 우리말로 번역할수 있어 우리 문화에 예전부 터 손님을 중시하는 전통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Server"의 경우는 후자에 속하는 예로서 "주인"은 개념상 잘 맞지 않는다. 다만 지난 93년 열렸던대전EXPO를 계기로 "도우미"라는 말이 많이 쓰였는데 이 말이 "Server"의 개념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여기서 흔히 쓰이는 용어 2개를 새롭게 번역하고 싶다. "시스템"과 시뮬레이션 이라는 말인데 "시스템"은 "우리말 컴퓨터 용어" 소책자에서 원어 그대로 쓰던지 "체계"로 쓸 것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여러 사람들이 "구조 ", "조직", "계통" 혹은 "망"이라는 말로 번역해서 쓰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시스템"은 종합적인 개념의 말로서 이를 구성하는 개체들과 그들의 관계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에 비해 "체계", "구조" 혹은 "계통" 등을 단지 "시 스템"을 구성하는 개체들의 논리적인 관계만을 표현하는 느낌이다. 따라서 신체 "육체" 혹은 "물체" 등의 말에서 볼수 있는 개념과 동일하게 계체 계체 가 어떨까 제안해 본다.
또한 "시뮬레이션"은 "우리말 컴퓨터 용어" 소책자를 보면 "현상 실험"으로 되어 있고 흔히 "모의 실험"으로도 쓰이고 있는데 실험중에서 현상 실험이나 모의 실험이 아닌 것이 거의 없듯이 이 말들은 "실험"이라는 말과 논리적인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이 경우에는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방진(방진)"이 어떨까 한다. "진실을 모방해 본다"라는 의미의 "방진"은 의미로 보나 어감 으로 보나 꽤 좋은 말인 것 같아 우리도 사용하자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