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명무실한 권장소비자 가격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구매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본사에 전자제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을 묻는 독자들의 전화가 많이 걸려오고 있는 데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중에는 권장소비자가격보다 20~30% 싸게판다고 하는 전자제품상에 들러 제품을 구입、 처음에는 싼 값에 구입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다른 점포에서도 그 값에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허탈감마저 느겼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요즘 전자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들 가운데 자신이 지불한 제품 값이 적당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또 권장소비자가 격표시에 대해 무용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 소비시장에 일고 있는 가격파괴현상이 전자제품분야로 확산되면서 제품에 표시된 권장소비자가 격과 실구매 가격 차가 너무 커 나오는 말들이다.

한마디로 그간 소비자들의 적정 구입가 파악에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던 권장 소비자가격이 가격파괴시대인 현재는 오히려 소비자들의 구매 가격 파악에 혼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권장소비자가격제도에 대해 재점검해 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권장소비자가격은 20여년전인 70년대에 제조업체들이 유통업체들의 지나친 폭리를 막고 가격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유통 점들의 할인판매가 빈번하고 신업태인 할인전문점 등장등 가격인하 바람이 확산되면서 권장소비자가격과 실제 판매가격의 차이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나마 세일때를 제외하고 거의 권장소비자가격에 판매해오던 시중 백화점들마저 최근 신업태 출현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할인가격 판매를 상시화、 이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권장소비자가격 산정에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공정거래관련 지침을 통해 제조업체가 권장소비자가격을 자율적으로 표시토록 하되품목별로 평균 판매가격의 20~30%이상 높게 책정하지 말도록 제시하고 있을뿐이다. 이처럼 정부에서 가이드라인만 정해주고 있다보니 제조업체는 제멋 대로 권장소비자가격을 책정해 제품을 내보내기 마련이고 유통업체는 이를빌미로 변칙적인 할인판매를 일삼는다. 실제 가격인하 바람이 각 분야에 확산되면서 권장소비자가격의 왜곡현상이 심화돼 소비자피해와 함께 유통질서 까지 문란해지고 있다.

주요 유통업계는 할인판매를 할 때면 마치 그간 권장소비자가격을 유지해온것처럼 할인율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등 이 제도의 도입 취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이용되고 있다. 이에따라 할인판매때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들은 싸게산 것처럼 우롱 당할 뿐 아니라 권장소비자가격대로 지불한 소비자는 그만큼 손해를 보는 느낌을 받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권장소비자가격제도를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행 권장소비자가격제도가 현실과 동 떨어져 무용론이 제기될 정도로 문제가 있는 만큼 어떤방법으로든 개선돼야한다는 점을 지적할 뿐이다.

전문가들은공정거래에 관련된 각종 지침에서 제품 가격을 표시하는 기준을 권장소비자가격에 맞출 것이 아니라 공장도 가격으로 바꾸는 방안이 바람직 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전자제품의 경우 대부분 공장도 값이 표기돼 있고 유통업체들이 할인판매행사때 이 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만큼 타당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특히 이 경우 유통업체들이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과장할인판매 행사도 사라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함께 정부가 권장소비자가격 제도를 공정거래차원보다 소비자 피해부분 에 초점을 두고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또 제조업체가 무분별하게 권 장소비자가격을 책정하는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장치 마련도 시급하다.

이는외산제품의 권장소비자가격이 수입가의 2배이상으로 표시되고 있다는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물론 유통구조가 다를 경우 판매가격이 차이나는 것은당연하다. 그러나 권장소비자가보다 40%이상 싸게 팔고도 그 할인율 만큼마진이 남는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어떠한 제도든 이상보다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아무리 명분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현실과 동떨어질 경우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격파괴가 확산되면서 현실과 거리감을 더해가고 있는 권장소비자가격제도에 대해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정부는 물론 제조업계도 진지한 검토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