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원 산책] 넝마줍기와 이삭줍기;김명준

컴퓨터의 주기억 공간을 여러 프로그램들이 나누어 쓰다보면 자투리들이 남아서 전체 기억 용량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때 수행하던 프로그램들을 잠시 멈추고 자투리들을 모아 다시 사용하는 방법은 컴퓨터의 수행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보탬이 된다. 이 방법을 영어로 넝마줍기(garbagec ol-lection)라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의 음식문화가 컴퓨터 용어에도 영향을 주어 "빵 부스러기 줍기"(ramasse-miettes)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어떤 교수님은 "이삭줍기"라고 멋있게 제안하셨는데 원어보다 더좋지 않은가. 씁쓸한 것은 이 좋은 용어를 널리 쓰지 않고 영어를 그대로 쓰는 컴퓨터 전문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외국에 유학했던 사람들은 영어를 많이 쓰는게 마치 실력이 있는 양 뽐내려 하고 국내에서 공부한 사람들도 그들에게 뒤질세라 영어를 많이 구사한다.

한글 용어가 불편하다고 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 보면 첫째, 영어 원어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번역어가 어색하다. 둘째, 너무 빨리 나오는 용어 들을 일일이 번역하여 따라가기에 시간이 없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제멋대로 번역하므로 통일된 번역이 없어 혼란스럽다는 이유를 든다.

전산용어 한글화에 대해 우리의 노력을 조금만 들이면 원어의 뜻도 잘 나타내고 우리 말 맛도 좋은 한글 용어들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전산기 용어 한글화 및 데이터베이스 표제어 개발에 관한 연구"(수탁자 경희대 진용 옥, 전자통신연구소 1994년 8월 29일)에서 몇가지 예를 들어본다. in-put output port를 나고 드는 목이라고 나들목, back up은 여벌받기, benchmark test는 견주기, booting은 띄우기 또는 시동, browsing은 훑어보기, bypass는 에돌기, formatting은 틀잡기, form feed는 용지먹임, hacker는 헤살꾼,last -in first-out은 끝 먼저 내기, directory는 자료방, hardware는 굳은모, software는 무른모, program은 풀그림 등등이다.

급변하는 전산 기술환경은 매일 매일 신조어를 내놓는다. 작년에 필자는 여러 강연이나 글에서 "middleware"를 "중간모"라고 번역하여 쓰고 다녔다. 작년 11월 어느 워크숍에서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중간모 대신 순수 한국말인 사이모 로 해도 글자수도 같고 의미전달도 잘되는 것 같다고 제안하였다.

즉시그 제안을 받아들여 그 후론 "사이모"를 애용하고 있다. 새로운 전문용어가 나올 때마다 한글용어를 만들어 보는 노력을 여러 사람이 같이 하면 위와 같은 훌륭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정보통신용어나 전산용어의 한글화에 관한 집단적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정보과학회,개방형 컴퓨터통신 연구회 등 학회의 한글용어집, 문화체육 부의 전산기 용어 순화집, 전자통신연구소의 전기통신용어집 등 권위있는기관이나 학회에서 한글 용어들을 만들어 제안하였다. 문제는 전문인들이 이들 한글 용어집을 참고하면서 애정을 가지고 쓰지 않는데 있다. 처음 사용할때는 조금 어색하더라도 자주 사용하면 귀에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데도노력을 하지 않는다.

전산 용어의 한글화에 관한 1차 책임은 이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인들에게 있다. 기술자라고 해서 기술만 잘 알면 되고 그 기술의 사회성은 언론인이나 언어학자 등 사회과학자들의 몫이라고 제쳐 놓을 순 없다. 왜냐하면 정보공원에선 전산 전문인들만이 산책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래의 싹인 어린이들도 뛰어 놀고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해바라기를 하셔야 한다. 그들에게 "mouse로 double click하라"고 하기보다는 "다람쥐로 딸깍딸깍하시오 라고 말하면서 의사소통해야 한다. 전산 전문인들끼리 모여 새로 나 온영어 용어를 잘 아는 체하는 것으론 우리나라에 모든 국민을 위한 정보공원을 결코 만들 수 없다. 제대로 된 정보공원이 없는데 무슨 흥겨운 산책을 할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