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빗장풀린 교환기 시장 (중)

한.미 양국이 그동안의 관례를 무시한채 AT&T사의 신형 교환기인 "5ESS-200 0"을 올해 한국통신 구매입찰에 참여시키기로 합의함에 따라 국내 교환기업 계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이번에 품질인증절차를 일부 생략、 시기적 으로 국내 공급이 가능해진 AT&T의 신기종 교환기는 성능과 가격경쟁력면에 서 국산 교환기에 비해 월등히 우수해 입찰허용 자체가 곧바로 국내업체의 시장점유율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AT&T 신기종 도입으로 국내 교환기산업의 시장재편이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게 됐으며、 그동안 삼성전자.LG정보통신.대우통신.한화전자정 보통신등 교환기 4사의 밀월관계는 사실상 막을 내리고 교환기 시장의 본격 적인 적자생존 시대가 돌입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이번에 한.미간 통상마찰의 장본인인 AT&T가 국내 교환기시장에 진출한 것은 지난 92년 한.미 쌍무협상이 체결돼 교환기를 포함한 국내 통신망관련장 비시장을 개방하면서 부터이다. AT&T는 이때 미정부의 통상압력을 바탕으로 5ESS 라는 전전자교환기를 들고나와 급속히 국내시장에 침투했다. 지난 93 년 AT&T는 국내교환기시장에 20.4%의 시장을 점유했으며、 지난해는 36.4 %로 점유율을 높여왔다.

그후 AT&T는 한국내에서의 교환기시장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해 지난해 10월 기존 모델인 5ESS를 개량한 모델이라며、 5ESS-2000기종에 대한 구매인증을 한국통신측에 신청했다. 처음에는 정보통신부와 한국통신의 기술 전문가가 이 모델을 놓고 종전모델을 개량 개선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기종인지 기술적으로 검토한 결과、 폭넓게 인증절차를 밟아야 하는 새로운기종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미국은 301조나 "미의회 불공정무역관행국 지정" 등을 앞세워 AT&T의 신형교환기를 국내 공급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해왔다.

결국이번 한.미간 협상에서 이 문제가 타결된 만큼 앞으로 국내 통신기기4 사가 균점해온 국내 교환기산업에 일대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

한국통신의 올해 교환기 입찰규모는 총 90만7천대이다. 이 가운데 AT&T가 참여할 수 있는 신규물량은 4백억원상당의 18만회선이고 이중 하반기 입찰물량은 30%가 약간 넘는 5만4천회선(1백20억원)이다. 따지고 보면 이 물량은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국내 교환시설이 1천만회선을 넘은 상태이고 앞으로교환기수요가 올해보다 많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안은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미국측의 압력에 굴복해 정부조달규정을 무시한채 예외 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에 AT&T가 미정부를 앞세워 신형교환기의 국내 시장허용을 요구한 것은 한풀벗겨보면 더 큰 속셈이 숨어있다. 정확히 말해 AT&T가 노리는 부분은 이번 한국통신의 교환기 입찰보다는 다른 쪽에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을 되짚어보면 장기적으로 현행 한.미간 조달협정 자체를 뜯어고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현재 한국통신등 정부투자기관으로 국한된 조달협정 대상기관을 민간기관까지 확대하려는 저의가 숨어있는 것이다. 국내 통신장비 시장 개방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이른바 성동격서의 전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데이콤의 시외전화사업등 통신서비스가 다양화돼 경쟁체제로 갈때를 대비해 이들 민간 수요를 잡아보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정부도 미국측 주장의 저의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야할 것이다.

물론 정부입장에서 WTO체제하에서 더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둬 정부 가 국내시장과 업계를 보호하는 관행은 더이상 어려우며 업계 스스로 경쟁력 을 갖춰 시장개방에 대응하는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이에따라 삼성전자.LG정보통신.대우통신.한화전자정보통신 등 국내 교환기 4사는 이번 한.미간 통신기기시장 개방협상의 결과에 대해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이를 수용키로 하고 앞으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와관련, 일부 업체들은 현재 교환기 4사가 공동참여하고 있는 개량형 전자 교환기 TDX-10A 개발사업에서는 공조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되 장기적인 대응전략으로 독자적인 투자와 기술축적으로 개량형 기종의 성능개선 및 신기종 개발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삼성과 LG측은 이번 협상결과에 대해 AT&T 신기종의 국내 진출을 끝까지 막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면서 이제 국내 4사가 물량 나눠먹기식 으로 안주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어차피 개방될 시장이라면 업계 스스로 자생 력을 키우는 길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떨어지는 대우통신과 한화전자정보통신은 이번한.미협상의 결과에 다소 불만을 나타내면서 정부의 통신기기산업 지원정책 의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구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