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형컴퓨터 개발 사업은 "차세대 컴퓨터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각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중 하나다.
대형컴퓨터 분야의 기술 확보를 위한 소리없는 전쟁이 국가간에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형 시스템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자랑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세계 컴퓨터 시장에서 계속 주도권을 확보하고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을 향상시킨다 는 차원에서 과학기술의 발전및 촉진을 위한 고성능 전산 계획을 수립、 고성능 컴퓨팅 관련 법안을 제정해 91년부터 5년간 30억달러씩 지원해 오고 있다. 후지쯔 NEC등을 중심으로 대형 시스템 분야에서 상당 기술을 축적하고 있는 일본 역시 6세대 컴퓨터 개발 계획、 전자계산기 상호운용시스템、 과학 기술용 고속 계산시스템등 프로젝트를 정부 지원하에 추진해오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컴퓨터 산업이 개인용 컴퓨터(PC) 위주로 성장하다보니 중대형 시스템 분야의 기술 수준이 매우 미약했으며 대형시스템 분야는기술 축적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과거 정보통신부 주도로 추진되온 국산 주전산기 개발 사업은 중형및 중소형 시스템 분야에서 나름대로 국내 기술을 확보하는 기반을 다지기는 했으나 아직 세계 시장을 겨냥하기에는 다소 역부족이다.
이같은 시점에서 나온 대형컴퓨터 공동 개발 사업은 분명 국내 컴퓨터 산업 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만하다. 이 시스템이 개발된다 면 통신 분야에서 TDX 전전자 교환기를 국산화한 것 만큼의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수 있다.
사실 국내 대형 컴퓨터 공동 개발사업은 지난 91년 12월 미국의 대형 시스템 공급업체인 유니시스사가 국내업체에 대형컴퓨터에 관한 핵심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면서 시작됐다.
정부 역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컴퓨터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대형컴퓨터의 기반 기술 확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 국책 과제로 추진해왔다.
지난 91년말 유니시스가 기술 제공 의사를 밝힌 시점부터 AT&T GIS가 기술 협력 업체로 선정되기 까지 무려 3년 이상의 기간이 걸렸다. 결코 짧지 않은시간이다. 혹자는 이 기간 동안 정부와 국내 업체가 적지 않은 돈을 써가면서 해놓은일이 고작 기술협력업체를 선정한 것이었냐고 비난한다. 또 정부가 이 사업 을 추진하면서 뚜렷한 업체 선정 기준이나 장기적인 전망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고 비난의 화살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형 컴퓨터 공동 개발 사업의 서막은 올랐다. 지난달 23일 한국AT&T GIS와 국내업계가 대형컴퓨터 공동개발에 관한 기술 협력 계약서에 서명하는 자리에서 한 업체의 관계자는 "이번에 기술협력 계약에 서명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과 업체간 알력이 있기는 했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대형시스템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기술을 확보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면서 가슴벅찬 감회를 숨기지않았다.
그러나 이같은 가슴벅찬 감회가 실제로 대형컴퓨터 기술을 확보하는 것으로연결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있어야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대형시스템 개발 업체들이 정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국내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는 국내 컴퓨터 산업의 자립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것 밖에는 안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산 대형시스템을 개발해 1차적으로 공공기관이나 일반 기업에 시스템을 공급하는 것으로 이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가령 시스템이 1차 설치 완료되었다고 하더라도 컴퓨터 산업의 발전 추세를 제대 로 따라가지 못하면 추후 발생하는 시스템 업그레이드나 시스템 노후시 교체 수요를 또 다시 외국업체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어야할지 모른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이와함께 정보통신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속병렬컴퓨터 개발 사업과의 괴리를 최대한 줄이는 일도 매우 시급하다.
사실 통상산업부와 정부통신부가 각각 추진하고 있는 대형컴퓨터 개발사업과 고속 병렬컴퓨터 개발 사업은 기술적인 면이나 시장성 측면에서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그동안 주전산기를 개발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축적한 컴퓨터 기술은 이제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
이를 무시하고 새로운 사업을 처음부터 또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적이지 못하다. 최대한 양사업의 접점을 찾아가는 작업이 어쩌면 이 사업의 성공 관건이 될 수도 있다. <장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