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판매기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단순한 판매기능에서 벗어나 하이테크를응용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등장, 편리성과 기능성을 더해가고 있다.
종류면에서도 캔이나 커피 등 음료자판기에서 팝콘, 계란프라이, 피자 자판 기에 이르기까지 각양 각색의 자판기가 나와 "자판기 춘추전국시대"라 해도과언은 아닐 듯 싶다. 낮은 인건비 등 경제력과 편리성 등을 강점으로 구멍 가게를 대체해 나가고 있는 현대의 "만물상"이라고나 할까.
자판기의 진출영역은 이제 식품에만 제한되지 않고 일회용품, 복권, 티켓발매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화되고 있는데 특히 자동발매기시장은 산업 전반에서 일고있는 무인화추세에 더해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자판기의 초창기라 할 수 있는 80년대 초까지만해도 커피.음료자판기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LG산전(전금성산전), 합동정밀 등이 차례로 자판기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자판기 시장은 급성 장을 거듭해왔고 최근들어서 다품종소량 산업으로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자판기는 우리나라에 보급되기 시작한 지난 78년을 기준으로 보면 당시 6천~ 7천대에 불과하던 것이 17년새에 무려 43배나 증가했다. 특히 88년 올림픽을 전후해 급격히 늘어나 89년말에는 10만대로 늘어났으며 90년대 들어서도연 15%이상의 꾸준한 신장을 보여 현재는 30여만대로 집계되고 있다.
내수포화 의식 수출강화올해 국내 자판기 시장규모는 2천억원선으로 지난해1 천7백억원보다 18%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러나 내수에서는 물량에 한계가 있으므로 현상유지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 수출을 늘림으로써 내수에서의 부진함을 보전할 것이라고 보고있다.
한국자동판매기공업협회(회장이희종)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액은 커피.캔 자판기와 담배자판기 등을 합쳐 6백53만달러였으나 올해는 3천7백18만 달러 어치가 수출될 것으로 예측됐다.
품목별로는 커피및 캔자판기의 수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특히 캔자판기의 경우 지난해 2백82만달러어치에서 올해는 1천5백13만달러어 치가 될 전망이다. 또한 최근 입법 예고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에 따라 시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담배자동판매기도 7백18만달러어치가 수출될 것으로 보인다.
자판기 종류의 다양화와 함께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은 수적 증가다. 90년대들어 음료시장을 끼고 자판기사업에 뛰어든 두산기계, 롯데기공, 해태전자와 만도기계 등의 발빠른 시장공략에 힘입어 자동판매기 시장이 확대됐다. 이들 후발업체들은 계열사나 모기업의 음료시장을 바탕으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유통망을 형성, 기존의 자판기업체들에 정면 도전장을 낸 셈이다. 삼성전자 나 LG산전으로 대표됐던 자판기 업계에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들 외에도 대기업중에서 대우전자가 자판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유 통망부족으로 인한 판매량 감소로 급기야는 사업성 재검토설까지 나돌았다.
업체간 경쟁 치열기존 자판기 업체와 음료회사를 배경으로 한 후발주자와의 시장 쟁탈전은 대리점 확보와 신제품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리점에 대한 지원을 놓고 각 업체간에 신경전을 벌이다 한때는 유통질서가 혼란해지기도 했다.
또다른 경쟁양상은 지속적인 신제품 출시. 물론 소비자들로부터 사양은 약간 만 변경시키고 가격만 올린다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고육지책으로 다양한 기능을 갖춘 제품을 내놓고 있다.
신제품 경쟁은 자판기 산업이 전자와 직결된 산업인만큼 그 주기가 무척 짧다. 따라서 업체간의 순위 싸움도 엎치락 뒤치락하기 일쑤다. 한쪽에서 분산 제어형 자판기를 출시하면 다른 한쪽에선 분산제어형에 컬럼수를 늘린 신제 품을 출시해 맞대응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만도기계가 오는 17일 커피.캔 복합자판기 신 모델을 출시하는데 이어 해태전자도 이달중으로 새로운 복합자판기를 선보일계획이다. 커피.캔자판기 업계서는 이밖에도 1인이 다수의 자판기를 원격으로 관리할 수 있는 원격관리 시스템 개발에 한창이다. 지난 93년 이래 이 원격관리시스 템의 개발이 진행돼 왔고 LG산전은 지난해 한양대에 VOMS-라는 이름으로 설치해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도 계속 보완을 하고 있는 상태이며 다른 업체들도 개발만 해놓았을뿐 실용화하지는 못했다. 아직까지는 시스템 을 사용할 정도의 대량 운영자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한편 대기업 외에 중소 자판기업체들은 특수자판기사업에 주력하고 있는데음료.스낵 복합 자판기의 생산업체인 도성전자를 비롯 동구전자 미니자판기 반석산업(전화카드), 삼경산업(토큰) 등이 그들이다.
국내의 자판기업계는 현재 커다란 문제에 직면해 있다. "더이상 비빌데가 없다 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데 이는 제한된 영역에만 자판기를 적용해 왔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업계는 자판기협회를 주축으로 신제품개발과 유통 등의 문제에 대해 해결방안 찾기에 주력하고 있다. 자판기업계에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또 하나는 식품위생법과 국민건강진흥 법에 따른 "위생"문제와 "담배자동판매기의 설치제한"이다. 업계는 따라서보다 위생적으로 관리가 가능한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담배자판기를 생산하는 업체에서는 수출길을 모색하는 등 활로찾기에전전긍긍하고 있다.
먹는샘물자판기시장가열90년대 들어 자판기 업계에 나타난 새로운 움직임은종류의 다양화로 볼수 있는데 지난해 등장한 "먹는샘물자판기"와 다소 이색 적인 자동판매기로 볼수 있는 "자동발매기"시장의 급격한 성장이다.
최근 몇년간 일련의 수돗물 파동으로 국민의 수돗물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하락함에 따라 먹는샘물이 크게 인기를 끌고 이 시장이 거대 시장으로 떠오르자 이를 자동판매기에도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먹는샘물자판기는 수요가 늘지 않고 있던 자판기업계에 새로운 총아로 떠오른 셈이다.
먹는샘물자판기는 이 분야에서는 비교적 일찍 사업을 시작한 동진미드이스트 를 필두로 도성전자, 제일벤도피아, (주)거성, 합동정밀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주)거상, 황제 등도 이들 업체로부터 OEM으로 공급받아 시장에 가세하고 있다. 이처럼 먹는샘물자판기에 대한 투자심리가 폭넓게 확산되면서 그동안 커피와 캔 자동판매기에 주력해왔던 대기업들도 새로운 거대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생수시장에 참여, 먹는샘물자판기 사업을 전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먹는샘물자판기를 검토하고 있는 곳은 기존 자판기 업체인 L사를 비롯, D사, M사 등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들은 오는 5월 먹는샘물 시판을 허용하는 "먹는물 관리법"이 통과되는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이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기업은 그러나 최근 정부가 먹는샘물의 유통용기에 대해 "유리병으로 하되 1년간은 유예해 PET병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발표를 한 이후 새로운 딜레마에 빠졌다. 유리병으로 하자니 기술도 어려운데다 비용도 많이들고 PET병으로 하자니 환경론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1년후에 시스템을 바꿔야 하기때문이다.
한편 업계는 해태음료, 롯데칠성음료 등이 먹는샘물 사업에 진출할 계획을 밝힌바 있고 이들이 각각 자판기 관련 계열사를 갖고 있어 결국 생수자판기 사업에 참여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자판기범주에 포함되면서도 운용시스템이나 판매되는 상품의 측면에서 자판 기와는 약간 다른 자동발권기 또는 자동발매기의 설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도 주목되는 현상이다.
기술확보가 사활관건자판기의 천국이라 불리는 일본은 자판기 숫자가 5백40 만대로 인구 20명당 1대꼴이다. 이제는 포화상태에 이르러 수적인 팽창보다 도 질적 향상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 일본 자판기업계의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커피나 캔자판기는 어느정도 보급됐지만 기타 다른 종류 의 자판기는 태부족이다. 기존의 커피.캔자판기도 기술수준이 낮아 인간의 노동력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자판기의 활로가 많이 남아있다. 동전만 사용하던 시대에서 지폐를 사용하게 된 것처럼 이제는 지폐에서 카드를 사용하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다. 기존에는 음료 또는 제품 등 단일화된 상품만을 판매했지만 앞으로는 4종이상의 복합자판기가 주류를 이룰 전망이다. 또한 자판기에도 POS 가 도입돼 전산처리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자판기 산업의 미래는 몇가지 요소만 뒷받침된다면 낙관적이다. 그 첫째는자동판매 문화의 정착이다. 소비자들이 자판기를 신뢰할 수 있도록 제품의 질을 개선하고 위생을 철저히 한다면 자연히 자판기 이용률도 높아지고 기계 의 보급도 늘어날 것이다. 혹자는 인건비가 더 오르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덜드는 자판기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소비자들의 신뢰없이는 확산되기 힘들다.
둘째는 기술력의 확보다. 자판기는 핵심부품 몇가지만 빼고나면 덩치큰 고물 에 불과하다. 자판기를 대표하는 핵심 부품으로는 지폐식별기, 호퍼, 코인메커니즘 등을 꼽는데 현재 대부분이 수입에 의존하거나 기술제휴로 생산하고 있다. 그나마도 부정확하다는 지폐전문가의 말이다.
이러한 제반 여건들은 업계가 자율적으로 나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기술개발과 아울러 국내시장에서의 이전투구식 경쟁을 지양, 해외로 눈을 돌려 대 외경쟁력을 확보할때 우리나라의 자판기산업은 첨단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것이다. 【박영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