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저항의 역사는 금성사.성요사 공장장을 지낸 차순수씨에 의해 시작된다.
차순수씨는성요사를 그만두고 73년 중반 아리아전자라는 개인회사를 군포에설립하고 당시만해도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던 특수저항기의 개발에 착수한 다. 당시에는 탄소피막저항기를 제외한 권선.시멘트.산화금속피막.금속피막저항 기 등 모든 저항기를 특수저항이라 불렀다.
차순수씨가 맨 먼저 생산한 제품은 전량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TV전원부 대전 력용 권선저항기였다.
권선저항기는 70년대 초 청계천상가에서 전기용을 중심으로 생산、 유통되기 도 했으나 품질이 열악해 전자용품는 사용할 수 없었다.
차순수씨는 권선저항기 개발의 관건인 불연성 실리콘페인트와 온도특성이 우수한 와이어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반자동기계를 제작、 15~30W의 권선저항기 를 월 4만~5만개씩 생산해 TV업체에 공급한다.
아리아전자가 제작한 권선저항기는 큰 인기를 끌었고 차순수씨는 이를 계기로 75년 회사를 법인체로 변경하고 일미크론 전기의 기술협조로 TV 및 모니터용 부품인 시멘트저항을 상품화한다.
권선저항 및 시멘트저항에서 자신을 얻은 아리아전자는 대대적인 특수저항사업을 계획하며 77년 일혼다통신공업과 산화금속피막저항기관련 기술제휴를 체결하고 이어 78년, 79년에는 금속피막저항기.휴즈저항기까지 제휴를 확대 한다. 국내에서 금속피막저항기와 산화금속피막 저항기를 처음 생산한 아리아전자 는 정부로부터 국산대체의 공로로 각종 상을 수상하며 82년에는 종업원 1백3 0여명에 월매출액이 3억원을 웃도는 국내 최대의 특수저항기업체로 발돋움한 다. 그러나 자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환경시험설비장치를 도입하는 등 무리한 설비투자가 화근이돼 82년에는 부도를 내고 회사를 넘겨주게 되는데 현 보강 전자가 바뀐 이름이다.
국내 유일의 비일본계 저항기전문생산업체인 필립스전자코리어(현 필코전자) 는 74년 5월 설립됐다.
전량수출을 조건으로 필립스의 출자분 3백만길더와 차관 및 전환사채를 포함 해 1천8백만길더의 자본금으로 출발한 필립스전자코리어는 저항기 및 컨덴서 를 주력생산했다.
설립 첫해인 74년 6월부터 공장가동이 본격화되는 75년 5월까지 공장건설과 함께 엔지니어의 네덜란드본사기술연수를 중점 실시한다. 기술연수는 첫해에 는 네덜란드본사에 15명이 6개월간、 다음해에는 12명이 대만필립스에 파견 되는 등 생산기술조기정착을 위해 집중실시된다. 이 기술연수는 이후 필립스 전자코리어의 품질관리에 하나의 분기점이 된다.
필립스전자코리어의 저항기생산설비는 그동안 국내설비와 달리 자동화된 설비였다. 조립라인을 기준으로 2개라인에서 월2백만개의 저항기가 생산됐다. 80년 단종된 바 있는 3분의 1W형 탄소피막저항기가 주력생산품목이었으며 이어 76년 에는 세라믹 플레이트 콘덴서를、 77년에는 전해콘덴서를 생산한다.
필립스전자코리어가 저항기의 국내 판매에 나선 것은 85년의 일이다.
물론정부가 동사의 78년말 수출조건변경신청을 받아들여 생산량의 10%내에 서 국내시판이 가능해졌지만 실제 내수판매는 85년에야 가능했다.
주거래선인 아시아 및 유럽지역 필립스계열사의 주문이 빗발쳐 수출물량공급 도 빠듯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필립스가 한국에 전자부품생산공장을건설한 것도 사실 부품공급기지로 육성키 위함이었다.
필립스전자코리어는 이후 매년 계속적인 증설을 통해 80년에는 월 5천만개까지 생산능력을 끌어올리고 저항기사업을 혁신、 주력생산품목인 탄소피막고정저항기생산을 중단하고 고부가가치 금속피막저항기의 생산에 나서기 시작한다. <조시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