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전환기의 한국통신 (2);나태와 규제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1982년 12월 10일. 한국통신이 당시 체신부에서 떨어져나와 공기업으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 대다수 직원들은 장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걱정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들은 한국통신에 온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선 체신부 시절보다 보수면에서 20~30%가 많았고、 전화보급 및 통신망을 늘려나간다는 자부심에 일은 고되더라도 매사 희망에 차 있었다.

그러던 한국통신이 정부의 보호 아래 지난 10년간 아무런 경쟁이 없는 "독점 기업"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전형적인 관료주의와 업무태만、 비효율、 느슨해진 조직관리 등으로 덩치만 비대해 졌다는 게 외부에 비쳐지는 한국통신의 모습이 되었다.

또 독점체제 아래서 통신서비스사업을 오래 하다 보니 결국 운영이 방만하게 되었고 조직원의 노령화로 내부 인사적체는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도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은 나눠먹기식 급여제도로 "시간만 흐르면 봉급이 오른다 는 점이었다. 한국통신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현실안주론에 듬뿍 젖어있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많은 조직원들이 정부의 규제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고 투덜대지만 이중 일부는 오전 11시반이면 점심 먹을 궁리를 하고 오후 5시반이면 퇴근길에 나서는가 하면 불친절한 대민 서비스와 구매업체에 대한 거만한 행동 등도 대표적 인 지적사항이다.

그러면서도 정보통신부와 보이지 않는 갈등、 이에 따른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 능력만 있다면 민간통신업체로 빠져 나가려는게 한국통신 조직원들의 뒷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순적 양상은 결국 지난 13년 전까지만해도 같은 배를 타고 정보통신이란 바다를 항해했던 정보통신부로 하여금 과거의 동료인 한국통신에 "공 정경쟁"이란 메스로 나태.비효율을 수술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했다. 현재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다가는 2년 앞으로 다가온 통신시장 개방이란 환경변화에 대처하지 못해 주라기 시대에 사라져버린 거대공룡의 모습처럼 한국통신도 전락하고 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면 21세기 45조원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초고속 정보고속도로를 구축할 주인공인 한국통신이 이렇게 추락의 길을 걷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또 무엇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방안인가.

이에 대해 한국통신의 한 관계자는 "한국통신은 정부의 지나친 규제와 간섭 때문에 현실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통신은 정부 의 23개 공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경쟁환경 아래서 사업을 하지만 정부투자기 관으로서 지켜야하는 각종 관련법과 제도에 구속을 엄격하게 받고 있다.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과 예산회계법이 그것. 물론 통신사업을 하기 때문에전기통신사업법이나 기본법에 적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지만 정투 법과 예산회계법의 지나친 적용은 오히려 경쟁시대를 맞아 거대 외국 통신회 사들과 싸워야하는 한국통신에게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는지적이다. 이 법의 적용으로 한국통신은 기술개발투자마저 예산심의를 받아야 해 업무 추진이 더딘가 하면 조직 및 정원까지도 재정경제원의 승인사항이어서 자율 경영이란 애초부터 찾아볼수 없다는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또 감사원의 정기감사에 대비하기 위해 업무를 분산시키고 불필요한 회의를 자주하는가 하면 중소기업육성진흥법에 묶여 공중전화박스조차 비싼 가격에 사면서 우수한 품질을 기대할 수 없다는게 한국통신의 하소연이다. 따라서 이러한 환경하에 공기업인 한국통신에 무작정 경쟁만 시킨다고 해서발빠른 민간기업과 실질적으로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정부가 공정경쟁을 도입해 이제 한국통신도 능력을 발휘할 때라고한다면 정부의 규제도 그만큼 줄어들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현재 KBS처럼 정투법의 적용을 제외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재경원 이 경쟁환경에 접어들고 있는 한국통신의 현실을 감안、 이 법의 적용제외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정보통신부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간섭 및 규제도 한국통신의 사기 를 저하시킨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사회의 안건을 15일 이전에 정통부에 상정해야만 하고、 정책의 반대입장을 개진시 회답문서를 찾아가도록 강요하는 가 하면 엄중 경고성문서로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문서를 정정해 다시 건의토록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한전과 도로공사 등이 시중은행에 금고를 두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통신은 정통부에 금고를 두도록해 자금조달의 다변화가 불가능하다는 항의도 있다.

따라서 이제 급변하는 정보통신시대를 맞아 정부가 한국통신의 역량을 제대 로 기대하려면 "공정경쟁은 지속추진하되 프랑스의 국영통신인 FT나 독일의D BPT와 같이 경영에 1백% 자율성을 갖도록 하고 정부는 지주회사 형태로 목표부여와 경영성과를 감독하는 차원에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