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9월 하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김재익이 국보위 상공자원분과위원오명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다. 국보위에서 같이 근무했던 그들은 서로 안면이 있는 정도일 뿐 식사를 같이 할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 당시 김재익은 국보위 경제과학분과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옮긴지 며칠밖에 안되었으며 오명은 국보위의 역할이 마무리되 어감에 따라 소속직장인 국방과학연구소로 원대복귀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광화문에 있는 모 한식집에서 그들은 마주앉았다. 밥상을 사이에 두고 대화 가 시작되었다. 경기고등학교 1년 선후배 사이라는 인연때문인지 둘사이의 대화는 쉽게 이루어졌고 길게 이어졌다. 주로 김재익이 질문을 했고 오명이 대답을 했다.
그들의 화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정책을 거쳐 통신에 이르기까지폭넓은 것이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냐에서부터 시작해 우리나라에 적합한 산업이 무엇이냐는 점에 이르렀을 때 전자공업이라는 대답이 나왔고 그 이유에 대해 둘은 쉽게 동의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앞으로 전개될 사회는 통신과 컴퓨터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정보화사회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사회로 또 다른 발전을 하게 되는데 산업사회로의 진입이 늦어 후진국이 되었던 뼈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가 정보화사회로의 진입이 늦어또다시 강대국의 정보예속국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보화사회로 나아가는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럴 러면 컴퓨터와 반도체, 전자교환기가 중심이 되는 전자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오명은 평소에 품고 있던 소신을 정책에 반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열심히 설명했고 김재익은 그러한 후배 과학도의 의견을 주의깊게 경청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전자산업에서 통신쪽으로 옮겨졌다. 김재익은 우리나라 처럼 부존자원이 빈약한 나라에서는 무엇보다 서비스산업이 주종을 이루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싱가포르가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가 되고 있듯이서울이 동북아시아의 금융 중심지가 되려면 사회간접자본으로서의 통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아직까지 통신이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려면 도로나 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통신에 대한 투자가 너무 안되고 있어 타분야의 발전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또한 그는 전화 청약 우선순위를 4순위로 나누어 차별적으로 공급해주고 있는 사실을 빗대어 국민을 1등국민, 2등국민, 3등국민, 4등국민 등으로 계급 화시키는 것이 통신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야기가 교환기 문제에 이르자 오명은 기계식 교환기를 청산하고 전자식 교환기로 넘어가야 할 필요성등을 설명했다. 국보위에서 전자교환기 생산의 4원화체계를 2원화체계로 바꾸는데 한몫을 한 바 있어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고 주장했다.
그런데 김재익이 교환기에 대해 기술적인 내용까지 자세히 알고 있으며 또 통신에 대해 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깜짝 놀랐다.
김재익이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시절에 집념을 가지고 전자교환기의 도입 을 추진했고 그 결과 일부 전화국에 전자교환기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오명 은 잘 모르고 있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있어 통신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데 공감하며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다음과 같은 결론에 공감 했다. 전자공업의 핵심은 산업전자인데 산업전자란 우리나라의 경우 통신산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전자공업을 육성하려면 통신산업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누구든지 통신산업을 잘 이끌어갈 사람이 있다면 우리나라 전자산업 발전에 견인차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다시 화제가 바뀌어 반도체로 넘어갔는데, 반도체가 전자산업 발전에 있어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선진국 수준에 비해 너무 뒤떨어져 있는 반도체산업 을 육성하지 않으면 다른 하이테크 분야의 산업육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동의했고 그동안 방위산업 육성에 많은 투자를 했으므로 그 제품을 수출하는 문제도 검토되어야 하며, 또한 연구소의 효율적인 운영방안과 연구개발비 의 확충 방안 등에 대한 의견도 교환했다.
퇴근시간 무렵부터 시작된 두 사람간의 대화는 통금시간에 임박해 끝났다.
첫만남에서 그들은 십년지기를 만난듯 지루한 줄 모르고 과학기술과 산업발전을 화제삼아 대화의 꽃을 피웠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오명은 상대방이 소문대로 아주 실력이 있고 유능할 뿐만 아니라 매우 겸손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대단히 겸손하고 차분하며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들으면서 생각보다 상대편의 얘기를 잘 유도해내는 기술이 있더군요. 특히 경제관료치고는 과학기술 분야에 대해 대단히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어요. 우리가 미처 과학 분야에서느끼지 못한 문제를 폭넓게 보고 있었구요. 굉장히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헤어질 무렵 김재익이 느닷없이 제안을 했다.
"오박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니까 나와 의견이 꼭맞는데 기왕이면 그런 문제를 직접 맡아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어느 포지션이라고 약속할 입장은 못됩니다만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돼서 나를 도와 주셨으면좋겠습니다. 그러면 그런 분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오박사께 맡기겠습니다.
"그 무렵 김재익은 국장급인 비서관과 과장 사이에 연구관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소장파 학자들을 앉힘으로써 경제정책에 관한 일종의 싱크탱크를 구성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아무런 자리나 직책에 구애됨이 없이 제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주 실력 있고 유능한 사람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고같이 근무하면 재미있게 일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오명은 김재익의 제의에 선선히 응했다. 그는 1년쯤 김재익을 적극적으로 도와 몇가지 당면 과제를 해결한 다음 국방과학연구소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며칠 후 김재익 경제수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경제비서실에서 과학기술 담당 비서관으로 근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오명이 동의함에 따라 2급 비서관으로 발령되었다.
경제학박사와 전자공학박사의 운명적인 만남-거기에서 우리나라 통신혁명이 싹트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